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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성모님 축일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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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25 | |||
구원 신비와 밀접한 관계…초기 교회부터 성모님 공경하며 여러 대축일·기념일 지내 누가 “성모님의 축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언제라고 답을 할까요? 많은 분들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례력을 잘 살펴보신 분이라면 ‘어? 성모님 축일이 또 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성모님의 축일은 몇 번일지 궁금해지는데요. 그래서 「전례력」을 꺼내서 2024년에 성모님에 관련된 축일이 몇 번인지 하나씩 세어봤습니다. 축일은 크게 대축일, 축일, 기념일로 나뉘는데요. 먼저 성모님을 기념하는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그리고 ‘성모 영보’를 기억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있습니다. 축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이 있고요. 그리고 기념일들이 11개 있습니다. 이렇게 2024년 전례력에 있는 성모님 축일을 세어보니 16개나 됩니다. 성모님의 축일은 참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축일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성모님의 축일이 더 있습니다. 이를테면 올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2월 11일)들이 전례력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이 축일들이 주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축일과 같은 전례일에는 등급과 순위가 있는데요. 축일과 기념일은 주일과 같은 더 큰 전례일이 같은 날에 겹치면 그 해에는 지내지 않습니다.(「전례력 규범」 60항) 교회는 초기 교회부터 성모님을 공경하며 기념해 왔습니다. 특히 431년 에페소공의회를 통해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면서 축일들이 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에페소공의회가 끝난 후 곧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는 8월 15일에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축일을 거행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은 날을 축일로 삼듯이, 성모님이 승천하신 날을 축일로 삼았던 것이지요. 이후로 성모님을 기념하는 다양한 축일들이 생겨나 오늘날처럼 많은 성모님의 축일이 생겼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도 성모님의 축일이 새롭게 제정됐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018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에 지내도록 선포하셨습니다. 교회가 전례력에서 이렇게 많은 성모님의 축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성모님의 축일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구원 신비와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이 연례 주기를 지내는 동안, 거룩한 교회는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풀릴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 있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한다”면서 “그분 안에서 교회는 구원의 뛰어난 열매를 경탄하고 찬양하며, 이를테면 그 지순한 표상 안에서 자신이 온전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열망하는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본다”고 가르칩니다.(「전례헌장」 103항)]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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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예물 준비 성가? 봉헌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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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0 | |||
예물 통해 우리 자신 봉헌하는 의미 담겨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따라 ‘봉헌 노래’를 기본으로 결정
오랫동안 성가대 봉사를 하신 신자분이 “예물 준비 성가라고 해야 하나요? 봉헌 노래라고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은 전례위원회에서 2008년 라틴어 제3표준 개정판의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이 용어에 대해 논의했던 과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라틴어인 ‘cantus ad offertorium’(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7, 74항)을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이미 2009년에 발간된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에서는 ‘예물 준비 성가’라고 표현을 했었기에 이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직역을 하여 ‘봉헌 노래’라고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다른 언어권에서의 번역을 비교 검토한 결과 직역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2017년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 개정판에는 ‘봉헌 노래’(57항)를 기본으로 하고 옆에 (예물 준비 성가)라고 하여,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지요. 봉헌 노래는 신자들이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가는 행렬에 동반하며, 적어도 예물을 제대 위에 차려 놓을 때까지 계속하는데, 분향이 이어질 경우에는 분향을 마칠 때까지 노래를 계속합니다. 이렇게 상을 차리고 고유 음식인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놓는 예식을 ‘예물 준비’라고 하며, 이는 최후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당신 손에 드셨던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대로 가져가는 행위에서 유래했습니다. 초기에는 교우들이 예물을 아무런 기도나 노래 없이 행렬을 지어 제대로 가져갔으나, 4세기 말경부터 행렬이 더욱 길어지고 예물 봉헌의 의미를 드러내는 행렬에 동반한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8세기까지 동방이든 서방이든 누룩 든 일반 빵을 성찬 빵으로 사용했습니다. 9세기에 이르러 서방에서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 때 사용하는 누룩 안 든 빵 사용을 도입하였고, 11세기경에는 현재와 같은 작은 제병들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방은 여전히 누룩 든 빵을 성찬 빵으로 사용합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는 ‘예물 준비 기도’는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파스카 축제, 학가다에 포함된 축복 기도인 베라카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빵 축복 기도는 빵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땅의 열매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기억하고, 이 빵을 주님께 돌려드리면서 생명의 빵인 주님의 몸이 되게 해주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포도주에 물을 섞는 이유는 고대 관습이 그대로 예식에 들어온 것으로, 의미는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인간인 신자 공동체의 결합을 상징합니다. 잔 축복 기도는 포도나무를 가꾸어 얻은 결실인 술을 주님께 돌려드리니 구원의 음료, 곧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를 위해 흘리신 피가 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빵과 포도주를 우리의 예물로 준비하며 아버지 하느님께 이 빵과 포도주를 마치 우리를 보듯 보아 달라고 청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준비합니다. 예물을 준비한다는 것은 예물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것은 곧 주 예수님께서 감사 기도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놓으시듯, 그분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그분에 의해 봉헌되는 제물처럼 우리 자신을 ‘높이 들어 올리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글 _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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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9) 사기꾼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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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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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강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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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11 | |||
감정은 마음의 근육과도 같아서 사용할수록 더 강해질 수 있어 자기 감정 들여다보는 훈련 필요
심리학자 시버드는 아주 특이한 연구를 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그 결과 그들이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게으른 듯 하면서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몸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거나 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지만 필요한 때는 아주 세심한 성격, 평소 자기 자신만 챙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어려울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잘 챙기는 등의 특징이었습니다. 혹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데 큰일이 생겼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장악한다거나,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우수하다고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늘 마음이 불안해서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힘을 다 소모해서 정작 싸울 때는 무기력한 사람, 늘 자기 것만 챙기고 이기적이어서 자기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총에 맞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성격이 경직돼 있고 명령조인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대처능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전쟁터에서의 생존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잘 들여다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야기할 대상이 없으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도 효과가 있습니다. 감정은 마음의 근육이라서 사용할수록 힘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감정의 근육이 좋아질수록 심리적인 여유가 생기고 표현도 자유롭고 유머러스해집니다. 이렇게 자기 감정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성격적으로 건강치 못한 덜떨어진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전쟁터같은 상황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낮다고 합니다. 아재개그 하나 하겠습니다. 낚시가 너무 좋아서 주일에도 가고픈 신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시골로 가서 하루 종일 낚시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하고나니 또 하고 싶어서 결국 매주 손님 신부를 불러다놓고 자기는 주말 낚시하러 떠났습니다. 신자들이 드디어 하느님께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신부에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한 번만 더 가면 국물도 없다!” 그러나 이미 중독 수준이 된 신부는 간이 부어 이번에는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에이~ 이 배에 20명이나 탔는데 설마 하느님께서 배를 뒤집으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너랑 똑같은 생각 가진 놈들이 20명이 될 때까지 기다렸노라!”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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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주일 특집] 역대 교황들의 출신 국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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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778 | |||
이탈리아 출신 210명으로 대부분…비유럽권 출신 1282년 만에 탄생 교황 주일(6월 30일)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날이다. ![]() ■ 이탈리아 출신 교황 제1대 성 베드로 교황부터 현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266명의 교황 중 교황청이 위치해 있는 이탈리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출신 국가별’ 분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오늘날 국가 개념과는 다른 도시 국가 시대가 있었고, 초세기와 중세기, 근현대를 거치며 국가 명칭과 국경이 달라진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이 제공하는 ‘교황 연대표’, 교회사 전공자인 김영식 신부(루카·서울 행운동본당 주임) 저서 「간추린 가톨릭 교회사」(개정판), ‘List of popes by country’를 포함한 영문자료들을 종합하면 이탈리아 출신 교황은 모두 210명이다. 전체 교황들의 78.95%에 해당하며 교황 10명 중 8명이 이탈리아 출신인 셈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가장 먼저 교황이 된 인물은 성 베드로에 이어 제2대 교황이 된 성 리노다. 성 리노 교황의 재위 기간은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교황 연대표’에 따르면 67~76년이다. 현재까지 이탈리아 출신 마지막 교황은 제263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으로 1978년 8월 26일부터 9월 28일까지 34일 동안만 재위했다. 짧은 재위 기간에도 따뜻한 성품과 겸손한 모습으로 신자들 사이에서 '미소의 교황'이라 기억되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제261대 성 요한 23세 교황(재위 1958~1963년), 제262대 성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년)도 이탈리아 출신이다. ■ 프랑스, 그리스, 독일, 시리아 출신 교황 이탈리아에 이어 가장 많은 교황을 배출한 국가는 프랑스로 모두 16명의 교황이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프랑스 다음으로는 그리스 출신이 12명이며, 시리아와 독일 출신 교황이 각각 6명이다. 그리스 출신 교황 중 제5대 성 에바리스토 교황(재위 97~105년)은 그리스계 유다인으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이 있고, 제73대 테오도로 1세 교황(재위 642~649년)도 그리스인이지만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서 다수의 교황이 나온 것은 제195대 클레멘스 5세 교황(재위 1305~1314년)이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기면서 교황직이 사실상 프랑스의 지배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아비뇽 유수’(1309~1377년)로 알려진 시기다. 클레멘스 5세 교황부터 제201대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재위 1370~1378년)까지 7명의 교황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었다. 아비뇽 유수 이전 중세기에 프랑스 출신으로 처음 교황이 된 인물은 제139대 실베스테르 2세 교황(재위 999~1003년)이다. 독일 출신 교황으로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에 바로 앞서 교황직을 수행했던 제265대 베네딕토 16세 교황(재위 2005~2013년)의 이름이 친숙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임 중 스스로 사임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자리를 넘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제외하고 독일 출신 교황들은 모두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라, 이탈리아 북부 등을 아우르며 존재했던 신성 로마 제국 시기에 탄생했다. 제151대 다마소 2세 교황(재위 1048년 7월 17일~8월 9일, 24일간 재위)부터 제153대 빅토리오 2세 교황(재위 1055~1057년)까지는 독일 출신들이 연이어 재임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독일 출신으로는 950년 만에 탄생한 교황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 스페인, 아프리카, 크로아티아, 포투투갈, 영국,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제37대 성 마다소 1세 교황(재위 366~384년)을 포함해 스페인에서 3명의 교황이 나왔다. 성 다마소 1세 교황은 오늘날의 포르투갈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로마 제국이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시절 제14대 성 빅토리오 1세 교황(재위 189~199년) 등 3명의 교황이 아프리카에서 탄생했다. 과거 ‘달마타’(Dalmatia)라고 불리던 오늘날 크로아티아도 제28대 성 카이오 교황(재위 283~296년) 등 2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교황 연대표’상으로는 제25대 성 디오니시오 교황(재위 259~268년)과 제83대 코논 교황(재위 686~687년)의 출신 지역이 ‘불명’으로 기록돼 있지만, 성 디오니시오 교황은 그리스 출생, 코논 교황은 이탈리아 시칠리섬 출생이라는 영문 기록도 존재한다. 교황을 1명 배출한 국가들도 있다. 제169대 하드리아노 4세 교황(재위 1154~1159년)은 영국, 제187대 요한 21세 교황(재위 1276~1277년)은 포르투갈, 제218대 하드리아노 6세 교황(재위 1522~1523년)은 네덜란드, 제264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폴란드 출신이다. 현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도 아르헨티나에서 탄생한 유일한 교황이다. 초대 교황 성 베드로도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이스라엘 출신 유일한 교황이다.
◆ 한국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프란치스코 교황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1984년 5월, 한국에 방문한 첫 번째 교황이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말로 한국교회를 ‘벗’이라고 표현하며 만남의 각별함을 강조했다. 가톨릭국가가 아닌, 아시아의 작은 교회이지만 교황은 한국교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교황주일을 맞아 한국교회와 교황의 특별한 인연들을 소개한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총 세 차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1989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에 한국을 찾았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위해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절두산이다. 순교자의 피로 자라난 한국교회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던 교황은 순교자의 땅에 뜨거운 경의와 존경을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2014년 방한했다. 8월 17일, 충남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아시아인들이여, 일어나십시오!”(Asian, you wake up!)라는 메시지는 아시아 청년들에게 신앙 안에서 깨어있는 삶을 상기했다. 두 교황은 30여 년의 간극을 두고 한국에 방문했지만 공통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분단국가인 한국의 평화 염원이다. 1984년 방한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한 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남북한 양측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 는 내용의 문서를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위 후 줄곧 북한 방문을 희망하며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한국전쟁 정전 70주년(7월 27일)을 맞아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강복 메시지를 통해 “정전 70년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의 기쁨’(로마 14,17)이 넘치는 전능하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정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적대행위 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참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도 제시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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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특집]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왜 축일이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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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210 | |||
상호보완적 관계로 교회 초석 놓은 두 기둥 함께 기려 6월 29일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기념한다. 서기 37년에 예루살렘에서 보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14년 후인 51년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다시 만났던 두 성인. 열두 사도의 으뜸인 베드로와,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의 축일을 함께 기념하는 이유와 축일 전반에 대해 알아본다.
두 사도의 순교일 혹은 유해 이전일 6월 29일은 두 성인의 순교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로마의 네로 황제(37~68)가 교회를 박해하던 기간에 순교했다. 베드로 사도는 64년(추정)에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칼리굴라 혹은 네로의 서커스’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베드로 사도는 네로의 박해 소식을 듣고 도망가던 중 자신을 대신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예수님을 만난 뒤 회개하고는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당할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다. 성당 내부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 아래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64년 혹은 67년(추정)에 십자가형보다 비교적 관대한 참수형을 당했다. 전승에 따르면 잘린 바오로 사도의 머리는 바닥에서 세 번 튀었는데 부딪힌 바닥마다 물이 샘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역을 트레 폰타네라고 부르며 그곳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 바오로 순교 성당이 있다. 바오로 사도의 무덤은 로마 외곽 성 바오로 대성당에 있다. 또 이날은 두 성인의 유해가 옮겨진 날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은 신자들이 258년 6월 29일에 발레리아누스 황제(190?~260?)의 박해를 피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유해를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로 임시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베드로와 바오로를 함께 기리는 이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초석을 놓은 두 기둥이다. 두 성인은 서로 다른 만큼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베드로는 신앙고백의 시초이며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에서 교회를 세웠다. 바오로는 교회의 박해자였다가 회심 후 이방인들에게 열성적으로 선교한 설교자요 교사였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한 가족을 모았다. 성 바오로 대성당 정문에는 두 성인의 생애와 순교 장면이 함께 묘사돼 있다. 이처럼 교회는 전통적으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복음으로 묶인 하나의 존재로 여겼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395년 한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도는 축일을 같이 지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서로 다른 날 고난을 받았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가고 바오로가 뒤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사도들의 피로 거룩하게 된 이날을 기념합니다.” 아울러 로마에서 순교한 두 성인은 로마의 수호성인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늑대에게 키워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건국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6월 29일은 로물루스와 레무스와 관련한 고대 기념일이었다. 이 기념일은 3세기에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로 대체되기 시작해 4세기엔 두 사도의 축일로 보편적으로 전파됐으며, 교회 박해가 지나간 5세기 중반엔 거의 대체 됐다. 축일을 기념하는 방법 4세기에는 이날 세 번의 미사가 거행됐다. 한 번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다른 한 번은 성벽 밖에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에서 봉헌됐다. 하지만 성 바오로 대성당이 하루 안에 이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기에 다음날인 6월 30일에 바오로 사도 기념일을 지내게 된다. 바오로 사도 기념일에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교회 전통에 따라 베드로도 함께 기념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 중 교황은 지난 1년 동안 새로 임명된 대주교들에게 양털로 만든 띠의 일종인 팔리움을 수여한다. 팔리움은 바오로가 순교한 트레 폰타네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도자들이 키우는 양의 털로 만들어진다. 이 중 새끼 양 두 마리를 ‘어린양’이라는 의미의 ‘아뉴스’로도 묘사되는 성 아녜스 대성당에서 교황이 축복하고, 이 양들의 털을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체칠리아 수도원 수녀들이 팔리움으로 만든다. 이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베드로 청동상은 붉은색과 금색의 망토로 덮고 교황 삼층관을 씌운다. 또 저녁에는 성대한 불꽃놀이를 열어 특별한 날을 축하한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이 대축일 혹은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또 다른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2월 22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자신의 지상 대리자이자 교회의 기초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반적으로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최고 목자로 표현된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 박해자였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다. 이를 기념하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은 1월 25일이다. 보통 바오로는 참수를 당했던 칼과 그의 편지들이 실린 성경을 들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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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성당에 ‘피엑스(PX)’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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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1 | |||
형제님들이 모이면 하는 군대 이야기 중에 종종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성당에 ‘피엑스’가 있는 줄 착각하고 일어난 사연입니다. 이등병 시절에 성당에 피엑스가 있는 줄 알고 선임병 몰래 성당에 갔다던가, 같은 이유로 천주교 종교행사에 참가했다가 실망했다던가 하는 이야기지요. 피엑스(Post eXchange)는 군대에 있는 일종의 매점입니다. ‘어떻게 성당에 피엑스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라며 우스갯소리로 여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건의 발단은 교회에서 아주 자주 쓰이는 기호에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떠올리셨을 것 같은데요. 바로 기다란 P의 기둥 아래에 작은 x모양이 합쳐진 형태의 기호입니다. 힘든 군 생활 중 마음을 달랠 군것질이 간절한 장병들이기에 이 기호를 보고 오해하게 된 것이지요.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일단 이 기호는 ‘피엑스’(PX)라고 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엑스피(XP)도 아닙니다. 그리스어 ‘크리스토스’(ⅩΡⅠΣΤΟΣ)의 앞에 두 글자를 따서 만든 기호지요. 바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글자라기보다는 기호다보니 ‘그리스도’라 불러도 되고, 사용한 글자대로 읽자면 ‘키’(Ⅹ)와 ‘로’(Ρ)를 합친 것이기에 ‘키로’라 읽을 수 있습니다. ‘키로 십자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합친 기호를 모노그램이라 하는데요. 특별히 ‘키로’처럼 ‘예수 그리스도’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모노그램을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이라 합니다. 크리스토그램에는 ‘키로’ 외에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IHS’ 혹은 ‘IHC’는 예수(ΙΗΣΟΥΣ)의 그리스어 표기의 첫 3글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시그마(Σ)가 발음을 따른 S와 모양을 따른 C로 변형된 것이지요. 그리고 ‘IC XC’는 이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크리스토그램입니다. 그리스어 ‘예수 그리스도’(ΙΗΣΟΥΣ ⅩΡⅠΣΤΟΣ)의 약자입니다. 이콘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동방교회에서 널리 쓰인 크리스토그램입니다. 교회는 예로부터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 불렀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예수님의 이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예언자,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는데,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공경하는 고유한 칭호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임금이요, 사제이며, 예언자이시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자 메시아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하신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어딘가에서 크리스토그램을 발견하셨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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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보편지향기도’인가 ‘신자들의 기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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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28 | |||
과도한 전례시간 때문에 사라졌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복구
신학생 때 읽었던 책 중 요즈음 다시 읽는 책이 있습니다. 루이 에블리의 「어떻게 祈禱할 것인가」인데, 서두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주 적게 기도하고 보기 드물게 기도하며 또 보잘 것 없이 기도한다. … 무엇보다도 우리는 몹시 분주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생활은 활동과 혼란, 때로는 선행으로 가득 차 있다. … 즉 우리는 일을 정지하고 정신을 집중시키며 기도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 통찰력있는 지적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예수님은 혼자보다는 이웃과 함께,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과 약속에 힘입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1티모 2,1-2; 2코린 1,11; 에페 6,18-19 참조). 이러한 모범에 따라 교회는 이미 1세기 말경부터 세상 구원을 위한 특별기도를 전례 중에 바쳤습니다. 95년경에 기록된 클레멘스 교황 저서에는 고통받는 이, 국가 지도자, 평화 등을 위한 여러 청원 기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강론 후 예비 신자들을 보낸 다음 신자들만 남아서 이 기도를 바쳤는데, 기도 내용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예비 신자들과 모든 이의 구원이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전통이 남은 형태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에서 바치는 ‘보편지향기도’인데, 당대의 기도 내용과 형식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사라진 원인은 전례 시간을 줄이려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전례 역사가 테오도로 클라우저는 「서방 전례의 역사」에서 밝힙니다. 현재의 ‘신자들의 기도’와는 달리 기도의 수가 많았고, 각 기도 다음에 주례자의 본기도가 있어서 다소 장황했으며, 반복이 잦아서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축일 미사가 세 시간 이상 지속되는 것을 문제 삼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개혁을 통해 신자들의 기도를 없앴습니다. 당시 ‘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회중의 응답이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현재의 자비송이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1400여 년 전 사라졌던 ‘신자들의 기도’의 가치를 인정하여 복구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용어인 ‘신자들의 기도’(oratio fidelium)와 예전에 사용하던 ‘공동기도’(oratio communis)를 ‘보편지향기도’(oratio universalis)로 대신하면서, 누가 기도하고, 어떤 지향으로 해야 하는 지를 더욱 분명하게 했습니다. 이 기도는 세 가지 특징, 곧 ‘하느님을 향한 간청’이며, ‘보편적인 선’을 지향하고, ‘교우들의 참여와 그들의 현실 반영’을 특징으로 합니다.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여 세상 구원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사람임을 이 기도를 통해 실천합니다. 물론 기도한 내용을 살아가려는 실천 의지가 있어야 결실을 볼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하지요.
글 _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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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8) 적극적인 여성, 레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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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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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일방적 관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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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77 | |||
서로 의견 맞지 않아 갈등 빚을 때 나와 상대방 뜻 같아야 사과도 가능 자기중심적 자세론 해결할 수 없어
살다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을 빚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관계가 힘들어서 급하게 해결하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화난 상태가 힘들어서 얼른 선물을 준비했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호의를 베푼 쪽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럽고 화가 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왜 그리 속이 좁냐고 다시 화를 냅니다. 그러나 사실 잘못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 쪽에 있습니다. 어떤 잘못인가? 내가 화가 풀렸으니 당연히 너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입니다. 그런 생각은 아주 유아적인 생각입니다. 사람마다 감정이 풀리는 시간이 다른데, 무조건 자기 기준과 자기 기분에 맞춰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란 것입니다. 상대방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을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상대방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왜 상대방이 나의 사과를 받지 않거나 거절할 때 화가 나는가? 내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무조건 내 기분을 맞춰야 하는 애완동물로 생각할 때 짜증나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서게 됐습니다. 천국 문 앞에는 사람들이 두 줄로 서 있었습니다. 한 줄에는 많은 사람이, 다른 한 줄에는 부자와 또 다른 부자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은 줄은 천국 문지기가 얼굴만 보고는 바로 천당을 들어가게 하는데, 딱 두 사람뿐인 줄은 아무 이야기도 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부자가 문지기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하느님께서 그러시는데 당신이 성당에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 안 나오다가 죽기 직전에 신자가 됐으니 천당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 다 들어오고 난 후에 맨 마지막으로 받아주라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슨 하느님이 그리 속이 좁고 옹졸합니까? 먹고 살기 바빠서 성당에 안 나갔는데 그게 뭐 그리 죄가 된다고 이러십니까?”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 치는 소리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야 이 고얀 놈아! 너 매일 술 처먹고 도박하고 딴짓해도 네 마누라가 기도 열심히 해서 봐줬는데! 감히 나에게 소리를 질러? 넌 천당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니 천국 문 옆에서 노숙이나 하거라!” 그런데 그 옆의 부자를 보시더니 “넌 들어 오거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부자가 다시 화를 냈습니다. “저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죽기 직전에 신자가 된 놈인데 저놈은 왜 받아주십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맘이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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