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본당 주보 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5)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성인이자 범계성당의 주보성인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

김대건 신부님는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충남 당진군)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 신부의 가문은 양반 집안이었으나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 나서는 집안의 노비를 모두 자유롭게 풀어주고 손수 집안 일을 하는 등 신앙인의 참모습을 가졌고, 증조부와 부친은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한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는 1836년, 16세 때 조선인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신부 모방의 눈에 띄어 최방제 프란치스꼬, 최양업 토마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유학 길에 올랐다. 세 명의 신학생은 그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1844년 12월에 부제품을 받은 그는 이듬해인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연안의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서품을 받았다.

1845년 페레올 고 주교와 다블뤼 안 신부를 모시고 김대건 신부는 상해를 떠나 라파엘호로 천신만고 끝에 10월 12일 충청도 서해안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촌에 상륙하였다. 모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최초의 방인 사제로서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신부들의 입국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국경에는 경비가 너무 엄하여 황해 바다를 이용하려는 계획으로,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에 이르러 중국 어선과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성인은 해주 감영에서 4차의 문초를 받았고, 중국 어선에 탁송했던 편지와 지도의 압수와 더불어 사건의 중대성이 인정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포청에 갇히게 되었다. 무려 40차의 신문을 받는 동안 김 신부의 탁월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한 일부 대신들은, 김 신부를 배교시켜 필요한 인재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김 신부는 도리어 관리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끝내 사학의 괴수라는 죄목을 붙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김대건 성인은 한국 사제의 주보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순교 이후

1925년 7월 5일 시복(諡福, 복자 품에 올림) 되었으며, 한국 천주교 200주년인 1984년 5월 6일 102명의 다른 순교자와 함께 시성(諡聖, 성인 품에 올림) 되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이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매년 수십 명의 사제가 탄생하고 있다. 교세 통계를 살펴보면 1996년 말에 교구소속 사제만 2,078 명이었으며, 수도회 소속과 외국인 신부 등을 포함하면 2,500명이 훨씬 넘는 신부들이 각자의 사목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 연보 >
  1. 1821.08.21충청도 솔뫼(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이냐시오)과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출생.
  2. 1836.04경기도 용인의 '은이 공소'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신학생 후보로 선발.
  3. 1836.12.03앞서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토마),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를로) 등의 인도를 받아 변문으로 출발.
  4. 1837.06.07중국 대륙을 남하하여 마카오에 도착. 이후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대표; Libois신부)에서 칼레리(M.C.allery)신부 등에게서 수학
  5. 1842.12.29변문 출발. 의주를 통해 조선에 귀국(1차 귀국)
  6. 1844.03.08훈춘을 거쳐 조선에 귀국(2차 입국), 경원에서 조선 교우 상봉.
  7. 1845.01.01조선교우와 상봉하여 조선에 귀국(3차 입국)
  8. 1845.04.30선교사 영입을 위해 현석문(가를로)등 11명의 조선인 교우들과 함께 제물포 출발(6,4 상해 도착)
  9. 1845.08.17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
  10. 1845.08.24상해에서 약 30리 되는 만당 성당에서 첫 미사.
  11. 1845.10.12충남 강경 부근의 황산포 나바위에 도착.
  12. 1846.05.14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자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주교의 지시를 받고 교우들 과 함께 마포를 출발.
  13. 1846.06.05체포됨.
  14. 1846.06.21서울 포도청으로 이송.
  15. 1846.08.29조선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회유문 작성.
  16. 1846.09.15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음.
  17. 1846.09.16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
  18. 1846.10.26이민식(빈첸시오)에 의해 미리내에 안장됨.
  19. 1857.09.23가경자로 선포됨.
  20. 1925.07.05시복됨.
  21. 1949.11.15 한국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결정. 로마 교황청에서 7월 5일을 김대건 신부 축일로 정함.
  22. 1984.05.06시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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