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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깔끔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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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19 | |||
작은 변화로도 달라지는 사람 마음 심리적 문제 갖거나 우울할수록 외적으로 다듬고 가꾸지 않으면 내적으로 더욱 황폐해질 수 있어
미국 의사 존픽(John Pick)이 1948년 학술지에 성형으로 얼굴을 고친 죄수 376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1% 정도만 재수감 됐고 대부분은 사회생활에 적응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면 자기 얼굴을 보며 울부짖습니다. 마치 얼굴이 자신의 보기 싫은 현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형을 하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듯해서 과거를 버리고 새 삶을 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자가 되지 않으려 애쓰며 삽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들여서 얼굴을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서 ‘환경 성형’을 해도 효과는 비슷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작은 변화만으로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분들은 대체로 자기를 가꾸지 않습니다. 심하게 우울한 분들을 보면 무언가 흐트러진 모습이 보입니다. 문제는 외적으로 다듬고 가꾸지 않으면 내적으로 더 황폐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는 옷을 단정하게 좋은 것으로 입으시라고 권합니다. 머리도 돈을 들여서라도 예쁘게 하시라고 하고요. 옷이 날개란 말은 헛말이 아닙니다. 외적인 것이 달라지면 내면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몇 년 전 재개발 동네에서 살면서 철거 업체들이 동네를 철거하는 과정을 보게 됐는데 그야말로 심리전을 펼치더군요. 보상받고 나간 집들을 부수는데, 아주 지저분하게 부수고 쓰레기를 길거리에 널브러뜨립니다. 동네가 지저분해지면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과 역겨움,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감안한 영악한 철거를 하더군요. 그 바람에 밀려나가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것을 봤습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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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7) 사순 시기는 40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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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213 | |||
하느님 만나기 위한 정화의 기간을 상징 ‘40’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에 따라 부활 전 40일 동안 준비기간 지내 예수님처럼 40일간 단식하기 위해 단식 없는 ‘기쁨의 날’인 주일 대신 재의 수요일부터 단식 시작하게 돼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왔습니다. 사순(四旬)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도 40을 의미하는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라고 부릅니다. 워낙 40이라는 말로 부르다 보니 당연하게도 사순 시기가 40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달력의 일수를 세어보시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사순 시기가 며칠인지 알고 싶으면 정확히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순 시기가 주님 부활 대축일 전이라고 생각해서 부활 전날까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떼어 놓지 않고 함께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까지를 세어보면 되겠습니다. 올해는 2월 14일부터 3월 28일까지가 되겠네요. 세어보니 44일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순 시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325년 열린 니케아공의회 즈음에는 부활 전에 40일 동안 준비기간을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의 홍수 기간은 40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기간이 4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했고,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을 향하기 위해 40일을 밤낮으로 걸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40일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단식하고 유혹을 당하신 일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예수님께서 이 40일의 단식 동안 겪으신 유혹을 설명하면서 “교회는 해마다 40일간의 사순 시기를 통해 광야의 예수님 신비와 결합한다”고 밝힙니다.
성삼일부터 40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딱 사순 제1주일이 됩니다. 그런데 왜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지내게 된 것일까요?
5~6세기경 신자들은 사순 시기에 ‘단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기쁨의 날이라 단식하면 안 됐습니다. 사순 시기 중 6일은 단식할 수 없는 날인 것인데,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40일 동안 단식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지금의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위한 단식을 시작하는 관습이 생겼고, 이날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정착됐습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은 단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의 수요일부터 주일을 빼고 단식하면 부활 대축일 전까지 40일 단식을 맞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순 시기는 정확하게 40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순 시기를 40일이라 부르고, 또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40일이라는 날수에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참회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순 시기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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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9) 하늘에서의 찬양이 땅에서도 울리는 대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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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60 | |||
자신보다 하느님께 영광 드리도록 이끌어 시편·찬가 등 담은 전형적인 찬미가 성탄 알리는 천사의 노래로 시작해 하느님 찬양·그리스도 찬양에 이어 마지막은 영광송으로 끝맺는 구조
여러분도 잘 아는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로 시작하는 「가톨릭 성가」 423번은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시편 90,4; 2베드 3,8 참조)를 기본으로 했습니다. 이와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이 성가의 구절을 곰곰이 묵상하다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하느님께 이렇게 청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 당신 눈에는 천 년도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당신 눈에 만 원을 주십시오.” 그리고 조금 후에 하느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그래, 내가 주마. 그러나 하루만 기다리렴.”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갈 때 하느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 모인 교회는 오래전부터 대영광송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렸습니다.
동방에서 전래한 이 찬미가의 저자나 작사 연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방에서는 이 찬미가를 성무일도의 아침기도 중에 불렀습니다. 서방 교회에는 4세기에 흘러들어와서, 4세기 중엽에 교황 집전 성탄 미사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7세기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따르면, 사제 집전 미사에는 오직 부활 주일에만 허용했다가 얼마 안 있어 새 사제의 첫 미사에도 부르게 했습니다. 현재처럼 주일과 축일 미사에까지 확대된 것은 11세기 말경입니다.
대영광송은 시편, 찬가 등을 담은 전형적인 찬미가입니다. 서언인 천사의 노래, 본론인 하느님 찬양과 그리스도 찬양, 마지막은 영광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동들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노래’(루카 2,14)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병행, 곧 하늘과 땅, 하느님과 사람, 영광과 평화로 짝을 이루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강조합니다.
본론의 첫 부분인 하느님 찬양은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라는 여러 동사들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본론의 두 번째 부분인 그리스도 찬양은 그리스도에 대한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호칭들을 통해 그분의 본질과 신분을 장엄하게 밝혀줍니다.
이어서 그분께 용서와 구원을 청하는 세 번의 간청 기도로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홀로’로 시작되는 세 번의 찬양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어떤 신이나 권력자와 비길 수 없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분임을 강조합니다. 유다인들은 시편을 읊고 나서 그 끝에 영광송을 바쳤고, 이를 본받아 초기 교회도 주요 기도나 찬미가를 영광송으로 끝맺곤 했습니다.(필리 2,6-11 참조)
자신의 영광을 더 우선시하며 살기가 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대영광송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인도합니다. 이런 대영광송의 의미를 예수회 삶의 모토인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가 잘 밝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rn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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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기분전환의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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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32 | |||
기분은 스스로가 조절할 수 있어 좋은 것 나쁜 것 선택할 수 있기에 즐겁게 살려면 나쁜 것은 버려야
“에라 기분이다~”,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기분이 왜 이래” 등 기분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분에 대하여 갖는 편견은 가벼운 것 진중하지 못한 것 등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기분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리 강하지 못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경향이라 기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심리학자 테이어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10일간 했습니다. 하루 중 다섯 차례 특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문제를 놓고 오후보다는 오전에 덜 심각하게 느끼고 긴장 피곤 상태일 때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세상사가 다 즐거워 보이지만 기분이 나쁘면 기도도 안 되고 입맛도 살맛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기분을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기분을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정도일까? 강의 때 질문을 하면 다양한 시간을 말합니다. 10분부터 몇 시간까지. 답은 3초입니다. 그러면 다들 “그럴 리가?” 합니다만 사실입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이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사람이 기분 나빴다가 좋아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3초 이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부부가 대판 싸웠습니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고 부인은 이불을 쓰고 누웠습니다. 누워서 생각해보니 남편이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한 것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시간이 가면서 분노가 치솟고 이혼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져 갑니다. 분노를 키운 탓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슬그머니 들어오더니 식탁 위에 무엇인가를 놓고 다시 나갑니다. 부인이 일어나서 보니 웬 봉투 하나가 놓여 있더랍니다. 열어보니 남편의 손편지가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여보 미안해~ 이걸로 기분 풀어”라고 써 있고 100만 원짜리 수표도 있었습니다.
자, 기분이 좋아지는데 걸리는 시간 얼마일까요? 이 질문을 하면 다들 까르르 웃습니다. “우리 남편이 10만 원이라도 주면 소원이 없겠어요.” 자매님들의 이구동성 대답입니다.
이렇듯이 사람의 기분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내가 보기 싫은 사람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은 사람의 마음이 ‘어린아이’ 같기 때문입니다.
기분은 내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분 나쁜 것을 생각하면 기분 나빠지니 기분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는 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상담하러 온 분들 중에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불쾌한 것을 손에 움켜쥐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는 것인데 답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리라고 하면 어떻게 버릴 수 있냐고 더 움켜쥐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 답이 없는 분들입니다.
내 머릿속에 기분 나쁜 것들을 불러들이지 말고 기분 좋은 것들만 초대하세요. 즐겁게 사는 아주 간단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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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전례 Q&A - 새 신자 궁금증 전례단장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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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72 | |||
가장 거룩한 시기…특별한 예식과 전례로 파스카 신비 드러내 성주간(聖週間)은 교회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시기다. 신자들은 부활의 기쁨이라는 절정을 위해 회개와 보속으로 사순 시기를 지낸 뒤 성주간을 맞이한다. 성주간은 특별한 예식과 전례가 많아 일반 신자들도 매년 새로울 수 있다. 성주간을 처음 보내는 신자들에게는 더욱 생소할 것이다.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새 신자 효주 아녜스씨와 본당 전례단장 모세씨의 대화를 통해 성주간의 의미를 짚어본다.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Q. 효주 아녜스: 다들 나뭇가지를 들고 무엇을 하는 건가요? A. 모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행렬과 환영하는 군중을 재현한 것이죠. 군중들이 외치는 “호산나”는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히브리에서 유래한 말로 기쁨과 승리의 환호성입니다. 또 군중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성경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사철 푸른 편백나무(혹은 측백나무) 가지를 사용하지요. 이날 축성된 성지(聖枝)는 보통 각 가정에 가져가 십자고상 뒤에 꽂아 약 1년간 보관한답니다. Q. 효주 아녜스: 그런데 그렇게 환호하던 것과는 달리 수난 복음에서는 군중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치네요. A. 모세: 이렇게 극적으로 두 가지 주제를 대비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엄숙하게 선포되는 겁니다. 오늘 전례의 핵심은 예수님 죽음에 관한 신비의 묵상이지요. 신부님이 입으신 홍색 제의도 승리와 수난을 둘 다 의미합니다. ■ 성목요일과 주님 만찬 미사
Q. 효주 아녜스: 성유 축성 미사는 무엇이고, 교구의 신부님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뭔가요? A. 모세: 먼저 성유란 본당에서 1년간 집전되는 여러 성사와 축성 등에 쓰이는 기름을 말합니다. 축성 성유, 병자 성유, 예비 신자 성유 이렇게 세 가지가 바로 이 미사에서 축성됩니다. 축성된 성유는 각 본당 사목자나 대리인이 직접 받아 본당에 가져갑니다. 오늘은 또 성유 축성뿐 아니라, 주교님과 교구 신부님이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하며 일치와 친교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처음 서품받은 때의 예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재다짐하는 ‘사제 서약 갱신식’도 하지요. Q. 효주 아녜스: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는 뭔가요? A. 모세: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는 미사입니다. 예수님은 이날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봉헌하셨죠. 발씻김 예식도 그날 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사랑과 겸손을 사제가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Q. 효주 아녜스: 오늘 미사 후로 바뀌는 게 많은 것 같네요? A. 모세: 맞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미사를 시작으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합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 전까지 어떤 종도 치지 않음으로써 귀의 즐거움을 절제하고, 수난 감실에 사제가 성체를 옮긴 뒤 본당 공동체가 돌아가며 밤샘 조배를 하죠. 그래서 제대의 감실은 비어 있게 됩니다. 또 제대보를 벗겨 놓는데, 오늘부터 어떤 전례도 거행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치우거나 천으로 가려야 하지요.
■ 주님 수난 성금요일 Q. 효주 아녜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예식은 무엇인가요? A. 모세: 오늘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위의 죽음을 어느 때보다도 깊게 묵상하는 날입니다. 교회의 오랜 관습에 따라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 외 다른 성사는 거행하지 않습니다. Q. 효주 아녜스: 오늘은 왜 미사가 아닌 ‘예식’이라 부르나요? A. 모세: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와 오늘 수난 예식이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의미를 담아, 오늘은 성찬 전례를 거행하지 않습니다. 수난 예식은 말씀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순서로 거행되지요. 그래서 미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성토요일 Q. 효주 아녜스: 오늘은 전례 상 일 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특별한 날이라고요? A. 모세: 맞아요. 일 년 중 유일하게 전례가 없는 날입니다. 성금요일처럼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제외하고는 어떤 성사도 거행하지 않죠. 하지만 임종하는 이를 위한 노자(路資)성체를 모실 수는 있습니다.
■ 파스카 성야 Q. 효주 아녜스: 신부님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굉장히 큰 초에 불을 붙이시네요? A. 모세: 파스카 성야 1부 ‘빛의 예식’입니다. 큰 초는 부활초인데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죠. 초에는 ‘A’(알파)와 ‘Ω’(오메가), 그 해의 연수가 표시돼 있습니다. Q. 효주 아녜스: 오늘은 독서가 7개나 되고, 얼마 전 경험한 세례식과 비슷한 예식도 있네요. A. 모세: 2부 ‘말씀 전례’에서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구약과 신약이 봉독됩니다. 독서가 무려 일곱 개지만 몇 개는 생략할 수 있지요. 하지만 탈출기 14장은 반드시 봉독돼야 합니다. 3부 ‘세례 전례’에서는 신자들이 세례 서약을 갱신하는데 그 전에 실제 세례식을 하기도 해요. 4부 ‘성찬 전례’에서는 새 신자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기를 권고해요. 오늘 밤 파스카 성야는 교회 전례 중 가장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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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6) 학사모는 원래 신부님들 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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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65 | |||
비레타, 전통적으로 쓰던 사제의 모자 학위 수여식에서 쓰는 학사모 검은색 사제각모 ‘비레타’가 원형 신부·주교·추기경 각각 색깔 달라
해마다 2월이면 대학마다 졸업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졸업식을 상징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학위 수여식에서 쓰는 학사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사모는 학사 학위를 받는 이들이 쓰는 모자를 일컫습니다. 모자의 상단이 딱딱한 사각형 모양이고, 술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졸업자들이 받는 학위에 따라 학사모, 석사모, 박사모라고 불립니다. 이 모자는 졸업식의 상징처럼 여겨져 유치원 등 어린이들이 졸업할 때도 사용하곤 합니다. 이 학사모가 원래 신부님들이 쓰던 모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도저히 ‘모자’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신부님들이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제각모라고도 불리는 비레타(Biretta)입니다. 비레타는 챙 없이 단단하게 각이 진 형태로, 윗부분에 등마루 모양의 둥근 장식과 술이 달려있는 모습의 모자입니다. 비레타는 중세에 성직자를 양성하던 성당학교에서 유래했습니다. 성당학교 학생들은 교복으로 가운을 착용했다고 하는데요. 특별히 졸업생들은 재학생들보다 더 긴 가운과 비레타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비레타는 성직자들의 복식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전례 중에도 사제들이 착용하는 대표적인 성직자의 복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추기경 서임식이라고 하면 교황님이 새 추기경에게 비레타를 씌워주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비레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성화 중에 검은 비레타를 쓴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성직자의 복식에 따라 신부님은 검은색, 주교님은 자주색, 추기경님은 진홍색 비레타를 착용합니다. 한편 중세시대 성직자들을 양성하던 성당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신도들도 교리와 문법을 배우는 곳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당학교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설립된 대학들이 성당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졸업식에 비레타를 착용했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학사모가 됐습니다. 신부님들의 모자 비레타와 학사모는 유래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들의 비레타 착용은 선택사항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비레타를 쓴 신부님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도 비레타를 쓴 신부님이 계십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가면 비레타를 쓴 신부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명동대성당에 상주하면서 기도에 전념하는 ‘주교좌 기도 사제’들입니다. 주교좌 기도 사제로 계신 유승록(라우렌시오) 신부님은 “비레타를 쓰고 다니면 몸가짐을 더 조심하게 되고, 사제로서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한 신부님은 과거 선배 신부님들이 쓰고 다니셨던 비레타를 쓰면서 그분들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분들의 수고와 사목적 열정에 감사하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비레타를 쓰는 신부님들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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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8) 모든 것을 정화하고, 세례의 은총을 청하는 성수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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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44 | |||
하느님 자녀로서의 모상 되찾도록 정화 미사 참회 예식 중 성수 예식 가능 세례 상기시키고 정화시켜 주면서 미사에 흠 없이 참여하도록 이끌어
물은 동전 앞뒷면처럼, 모든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여인에게는 우물의 물을 달라고 청하면서, 당신이 줄 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절대 마르지 않는 샘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샘이리라. 물은 또한 정화와 쇄신의 힘도 있습니다. 특히 세례의 물은 우리에게 과거의 잘못을 씻어 주고 새사람, 곧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세례성사-생명의 축제」에서 세례수의 정화 특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수는 아이 안에 나타나는 둘도 없는 하느님 모상을 흐리게 하는 모든 것을 정화하고자 한다.” 교회는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물의 기본적인 특성을 성서적 배경과 함께 전례에 도입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수 예식입니다. 물을 축복하여 가정에서 사용하는 관습은 이미 5세기경부터 전해 내려왔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북 유럽에서는 중세 초기 이래 수도원이나 묘지 등에서 물을 축복하고 행렬하면서 성수를 뿌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레오 4세 교황(847-855) 이래 성수 예식은 주일미사 전 예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이 예식을 「로마 미사 경본」(1570)에 수록하여 주일 낮미사 전 예식으로 고정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후에는 참회 예식에서 성수 예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주일, 특히 부활 시기의 주일에는 통상적인 참회 예식 대신에 경우에 따라 세례를 기념하는 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51항)라고 하며, 부활 때 받은 세례를 상기시키며, 본래 하느님의 모상을 흐리게 하는 것을 정화하여,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미사에 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성수에 지역의 문화와 풍속에 따라 소금을 넣을 수 있습니다. 소금을 넣을 때는 예언자 엘리사 이야기를 상기시키고(2열왕 2,19-22) 소금이 갖는 정화적인 상징성을 확인시키는 축복을 합니다. 성수의 본질적인 요소는 물과 축복기도이기에 꼭 소금을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수 축복 이후에 사제가 성수를 뿌릴 때 교우들은 고개를 숙여 십자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부활 시기가 아닌 때에는 ‘Asperges me’(‘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시편 51,7)라고 하여, 에제 36,25-26과 1베드 1,3-5로 구성된 찬미가를 부릅니다. 반면에 부활 시기에는 전통적으로 ‘Vidi aquam’(‘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에제 47,1-2.9)과 스바 3,8과 다니 3,77.79 그리고 1베드 2,9에서 취한 찬미가를 부릅니다. 미사의 참회 예식으로서 성수 예식은 ‘세례-파스카-참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드러내 주지요. 세례를 통해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상을 되찾도록 정화시켜 주는 성수 예식은 미사에 제대로 그리고 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정결한 물을 뿌려 모든 부정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고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리라.”(성수 예식, 부활 시기 아닌 때, 따름 노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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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화를 키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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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22 | |||
‘화를 내는 것이 무슨 이익이 될까?’ 마음 안의 손익계산기를 작동시켜 무익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면 타오르는 분노 누그러트릴 수 있어
질 볼테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는 “분노를 키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분노를 키우면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레드포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적대감이 큰 사람들은 자기방어라는 인식 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행동 하려는 충동이 강하다. 그리고 대처 능력이 약해서 결국은 스스로 소외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말처럼 내 안에 화가 많으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칫 고독사 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음 안에 분노가 가득한 사람들은 건강도 좋지 않습니다. 작은 자극과 스트레스에도 신체적·생리적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나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면역력도 약해져서 작은 병에도 쉽게 걸립니다. 분노가 가득한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판단력도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심리적으로 ‘터널비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넓은 시야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터널 끝을 보듯이 시야가 좁아져서 오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고 사람들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세우고는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분노를 키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를 키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가 화가 났을 때 우리 마음 안에서 화가 머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강의 때 교우분들께 “화가 나면 몇 시간이나 지속되나요?” 물으면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한 달이 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질 볼테 테일러 박사의 관찰에 의하면 “화가 났다가 가라앉는데 걸리는 시간은 90초라고 합니다”라고 말하면 다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들 하십니다. 화가 풀리는데 90초밖에 안되는데 왜 긴 시간 화가 나는가? 그 이유는 화를 키워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하여 분노하는 시간은 90초밖에 안되지만 화를 내다보면 다른 것들도 생각나서 분노가 기하급수적으로 배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지뢰밭의 폭탄을 하나 터트리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오르는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음 안의 손익계산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인간은 본시 자기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인데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너에게 무슨 이익이 될까?’라고 자기 질문을 하면 마음 안의 손익계산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손익을 따집니다. 그리고는 화를 내는 것이 무익하다싶으면 분노를 누그러트린다는 것입니다. 화를 키우는 것은 불장난 하는 것과 같아서 결과는 참담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억울하다 하더라도 화를 키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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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占)의 유혹에서 그리스도인의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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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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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와 요행’ 바라지 말고 신앙에서 희망 찾아야 사주·타로점 등 점술·역술 행위 한 남자 방송인이 새로 옮긴 사무실 터와 인연이 좋은지 타로점을 본다. 흔히 보는 타로카드가 아닌 꽃모양의 카드를 뽑으며 운세를 듣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다른 방송에서는 친구 사이인 남녀 탤런트가 야외에서 데이트를 즐긴 뒤, 타로 궁합을 보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올해 만나는 운명의 상대가 평소에 알던 사람”이라는 점괘는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며 흥미요소를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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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미사 전례] (7) 복된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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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문영루카 | 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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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고백은 곧 자비하신 하느님 찬미하는 일 하느님 현존 청하는 인사에 이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를 하고, 참회를 할 수 있도록 짧은 침묵 시간을 가진 뒤 공동체 전체가 고백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가 하는 사죄경을 바친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세계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꼽힙니다. 바다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카니발, ‘가면 축제’ 때에는 세계 각지에서 이 축제를 즐기려고 많은 관광객이 몰립니다. 축제는 1월 말에 시작해서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에 끝납니다. ‘카니발(Carnival)’이란 단어는 종교적 배경 곧 사순 시기에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과 금육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전통과 연관됩니다. Carnival은 라틴어 ‘Carnevale’에서 유래했으며, 이 단어는 ‘고기(carne)’를 ‘치우다(levare)’ 또는 ‘안녕(val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곧, 카니발은 ‘고기를 치우다’ 또는 ‘고기여, 안녕!’이라는 의미이지요.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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