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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삼촌, 오늘 아침에 고구마튀김을 좀 했는데 이거좀 드셔보슈.’ 하면서 주시기도 하고
‘1000원어치 더 넣었으니께 맛있게 드세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생각해 보면 이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과 고객층들 모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엔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있겠죠.
시장 뿐 아니라 장사를 하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사기쳐서 사람들 등쳐먹으려는 사람,
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하면서 떵떵거리는 사람,
‘어떻게 하면 저 집을 누르고 우리 집이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약육강식의 사고방식으로 이기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경쟁심,
뒤로는 나쁜 짓을 일삼으면서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사람
...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타성에 젖은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돈이 오고가는 곳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딱 맞는 것이죠.
물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시지만
앞서 언급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그 시장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보고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직설하십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나를 내어주는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하느님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아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이고, 또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가 ‘성령의 궁전’이라면
우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헌데 그렇게 사는 게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수석사제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그들이 양심의 소리에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소굴 속의 강도는 그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우리 중에 누가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타성에 젖어서 양심의 소리에 무뎌지는 순간 예수님은 우리 손에 죽으시는 겁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협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위협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우리는 체칠리아 성녀의 영성을 묵상해야 합니다. 체칠리아는 ‘천상의 백합’이라는 의미에요.
하느님께서는 오늘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백합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여, 세상의 어둠이 우리를 유혹하고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요, 성령의 궁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는 그런 거룩한 오늘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녀 체칠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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