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1024 다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소방차를 불러야 할까요?)
2019-10-24 18:38:20
박윤흡 조회수 950

  오늘 우리가 들은 이 복음이 몇 주전 주일미사 때 나와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기 위해서 당신이 오셨는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과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분열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역설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오늘은 다른 대목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초등부 친구가 제게 와서 물었어요.

‘신부님, 왜 예수님께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하는 거에요? 불을 지르면 사람들이 죽잖아요.’

여기에서 나온 이 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등장하는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성령’입니다. 성령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어요.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여기에 ‘숨’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태초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계셨다’고 고백하는 우리 신앙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죠.

  또 성령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던 비둘기가 있고요,

요한 복음에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 3,8)고 할 때의 ‘바람’,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증언판을 주실 때 보이신 ‘하느님의 손가락’,

예수님께서 출사표를 던지실 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는

이 대목에서 보여지는 ‘기름부음’, 끝으로 ‘불’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해됩니다.

“나는 세상에 성령을 지르러 왔다. 성령이 이 세상에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50)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성령의 뜻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겠죠.

 

  성경의 맥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의 앞뒤로 이런 가르침들을 설파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탐욕을 조심하여라.’ ‘곳간에 재물을 쌓아놓은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세상 걱정은 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걱정하여라’,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깨어 있어라’,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이야기’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

그리고 끝으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루카 13,5)

 

  결국, 예수님의 바램은 하나였습니다.

만약 제멋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제발 좀 회개해서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니까 한 줌 먼지와도 같은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 안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갑니다.

‘신부님, 왜 예수님께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하는 거에요? 불을 지르면 사람들이 죽잖아요.’

제가 대답했어요.

“우리 여름신앙학교가서 캠프파이어 했었지? 예수님이 지르시는 불은 캠프파이어처럼 기쁨을 주는 불이야.”

 

  예수님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산다면 우리의 삶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겠죠.

저 또한 이런 내용의 강론을 하며 성찰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의 불을 지르러 오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며, 기쁜 저녁시간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은 축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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