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929 다해 연중 제26주일(이민자의 날)
2019-09-29 08:09:13
박윤흡 조회수 601

  오늘 교회는 연중 제26주일을 보내면서 동시에 ‘이민자의 날’을 기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기울이자’는 취지로

‘이민자의 날’을 제정하셨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0여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 중 근로자가 60%, 7%는 혼인, 나머지는 유학과 기타 이유로 분류됩니다.

국적으로는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50%정도 되고 서양 사람은 소수, 나머지는 동남 아시아권 사람들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외국인의 한국 체류가 급증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첫째, 내국인 구인의 어려움 둘째, 값싼 노동력, 인권비 절감이죠. 이 외에도 장시간 근무 가능, 인력관리 용이 등이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근로자가 230만원 정도, 외국인 근로자는 18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임금마저 체불되어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고 한국 사람들이 사기도 치고,

심지어 직장 내 폭행, 여성 근로자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등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죠.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말을 못한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불법체류라고하며 수직구조, 상하관계로

인권 침해와 차별 대우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해 있는 현실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국적과 인종, 피부색,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어떠한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는 다 소중하다고까지 합니다. 노동은 숭고한 직무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할까요?

아니, 그저 모든 이가 동등한 입장에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울까요?

 

  오늘 복음에서 저는 그 답을 발견했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부자, 라자로 그리고 아브라함 할아버지.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를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루카 16,19-20).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살던 이 부자에게 가난한 라자로가 보였을까요?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아마 부자도 그랬을거에요.

여기에서 이 부자를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하늘 나라의 심판이 어디있어? 남이 어떻게 되던 말던, 나는 나만 잘 살면 돼.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게 중요해!’ 하는 마인드가 부자의 인생철학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나만 생각하고 살던 부자는 결국 죽어 하늘나라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대목이 흥미로워요.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루카 16,23).

 

 

  ‘눈을 드니, ~ 보였다.’

부자는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만 위하고 남이야 뭐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승에서 떵떵거리면서 살다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니까 이제야 눈을 들게 됩니다. ‘눈을 드니, ~ 보였다.’

복음은 그때가 돼서야 드디어 부자가 눈을 들고 라자로를 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부자처럼 아주 쉽게 인권 침해, 차별 대우, 비인격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어요.

이런 모습은 비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식당의 근로자들을 향해서,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 무의식에는 ‘눈을 들어 이웃을 보기 보다는 나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갑질의 욕망’이 깔려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늘 이민의 날을 제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고결한 사랑은 ‘보답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 조차 없는 이들에게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향한 배척과 무관심, 갑질의 욕망을 거두고

환대, 보호, 인격적인 존중, 일치의 영성을 가져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웃을 향해 ‘눈을 들어야’ 하겠지요. 그래야 보입니다.

결코 내 것만 챙기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들어 이웃을 보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우리 가슴에 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몫임을 기억합시다.

 

  “가장 고결한 사랑은 ‘보답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조차 없는 이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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