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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제목을 저는 ‘헤로데의 두려움’이라고 짓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은 헤로데를 중심으로 풀어갑니다.
오늘 이 대목은 이미 헤로데가 요한 세례자의 목을 베고 자신의 첩인 헤로디아에게 그 목을 바치고 나서 등장하는 장면이죠.
복음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에 관한)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루카 9,7). 무슨 일을 들었을까요?
세례자 요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루카 4,16-30)하시고 회당에서 더러운 영도 쫓아 내셨죠(루카 4,31-37).
시몬의 병든 장모와 많은 병자도 고치십니다(루카 4,38-41).
특별히 나병환자, 중풍병자(루카 5,12-26), 손이 오그라든 사람(루카 6,6-11),
백인대장의 병든 종까지 치유하십니다(루카 7,1-10). 심지어 죽은 과부의 외아들은 살려내십니다(루카 7,11-17).
헤로데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목을 베었던 요한과 비슷한 노선을 걷는 예언자로 느껴졌습니다.
마태오 복음 14장 5절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4,5).
하지만 죽였어요.
마르코 복음 6장 20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마르 6,20).
하지만 결국 헤로데는 요한을 죽였습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면서도 두려웠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추대하니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 그것이 두려웠어요. 인간적인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두려움이 더 중요합니다.
이 두 번째는 ‘도대체 그들이 추구하는 하느님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하느님이 두려웠던 것이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서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헤로데의 두려움을 강조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주제입니다.
하나,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둘, ‘제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하느님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한계지어진 존재’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가끔 “두려워하지 마라”하시는 것은 세상적인 것들, 또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며,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