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829 다해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미덕과 악덕의 선택, 더불어 오는 책임까지 나의 몫입니다.)
2019-08-29 18:06:04
박윤흡 조회수 784

  오늘은 강론의 문을 열며 투표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신약의 예언자,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던

요한 세례자는 덕이 충만한 사람이었을까요, 악덕한 사람이었을까요?

 

  2. 이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세속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요?

 

  3. 오늘 복음에 헤로디아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헤로디아는 선한 사람이었을까요, 악덕한 사람이었을까요?

복음은 헤로디아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마르 6,19)

 

  4. 헤로데는 어떤 사람일까요? 헤로데는 착한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복음에 의하면,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서 당황하면서도 두려웠기 때문에

요한의 말을 잘 들었다고 전해줍니다. 양심의 갈등을 느끼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입니다.

사람들이 옳은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그릇된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옳은 말을 했던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옳은 말을 들으면 불편해 합니다.

요한도 물론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 있기 때문에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진력을 다했던 것이죠.

 

  그 요한이 헤로데랑 헤로디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네가 해온 방식이 잘못된 방식이야. 잘못살고 있다고! 그러면 안돼!’

흥미롭게도 헤로데는 알고 있어요. ‘맞아,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지. 고쳐야하긴 하는데...’

그런데 헤로디아는 어떻습니까?

‘내가 잘못했다고? 참 나. 저 놈 자꾸 거슬리네. 내 어떻게든 저 놈을 처리하거나 죽여버려야겠다.’

결국 요한 세례자를 참수시켜버립니다.

 

  위대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미덕과 악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미덕의 실행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악덕도 마찬가지다.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면, 행하지 않음도 우리의 몫이다. 

고상한 행위나 수치스러운 행위를 하고 안 하고가 우리에게 달려있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느냐도 우리에게 달려있다.

충만한 덕은 절대자로부터 비롯되지만 사악함은 자발적이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제3권, 제5장 중에서)

 

  진리를 위하여 순교했던 요한 세례자, 양심의 소리에 죄책감을 느끼던 헤로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눈에 뵈는 게 없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갔던 헤로디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아이히만처럼 악에 눈감고 지시받은대로 했을 뿐인 헤로디아의 딸.

이 네 사람은 하느님의 면전 앞에서 심판 받던 날 어떤 결과가 났겠습니까?

 

  우리는 두 손을 모으고 묵상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닮았는가?

갈등의 아이콘 헤로데? 이기심에 불타는 헤로디아?

악일지라도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 헤로디아의 딸인가? 아니면 옳은 길과 진리를 추구했던 요한 세례자인가?

 

  진리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했던 요한 세례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 낙원의 기쁨을 선물로 주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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