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818 다해 연중 제20주일(우리들의 영혼에 성령의 불을 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
2019-08-17 17:46:01
박윤흡 조회수 894

  우리 형제 자매님들, 한 주간도 안녕하셨는지요?

 

 

  얼마 전, 동기 신부 사제관에 놀러갔다가 요기를 할 겸 과일을 사러 갔습니다.

멜론, 복숭아, 포도, 수박 등의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멜론은 모양이 동그랗고 녹색이 서린 부분은 짙은 녹색이어야 하며 꼭지가 시들지 않아야 맛있습니다.

복숭아는 꼭지 쪽에 파린기가 없고 전체적으로 색이 선명하고 진한 향기가 나면 맛있죠.

또 너무 차게 하면 맛이 떨어져서 냉장보관 했다가 실온에 꺼내서 먹습니다. 취향에 따라 단단하냐, 무르냐 차이인 듯 합니다.

수박은 배꼽이 작고 줄이 선명해야 당도가 높고 맛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과일을 고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은 과일은 맛이 좋고, 좋지 않은 열매를 맺은 과일은 맛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질문이 생깁니다. ‘불을 지르러 오셨다니 무슨 말씀인가?’ 그러다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 3,10-12)

 

  예수님께서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말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겠다는 당찬 포부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어요.

 

일찍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의 씨앗’, ‘생명의 씨앗’을 뿌리셨는데,

‘과연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가꾸어 좋은 열매를 맺는 알곡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나쁜 열매, 쭉정이인가?’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되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또 집안의 식구들이 갈라선다고도 말씀하시죠.

이건 단순히 함께 사는 우리 가족들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 공동체를 겨냥하는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전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과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이 이 자리에 둘러 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누구는 정말 매일 새롭고 생명이 가득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반면,

누구는 타성에 젖어서, 누구는 과거에 얽매여서, 누구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만 남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열을 일으키러왔다!'하시는 말씀,

예수님은 태초부터 세상 끝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서

의도치 않게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지만,

당시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사두가이들은 끝까지 그분의 말씀을 거부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구원받았을까요? 물론 그건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세상에 살면서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더운 이 날씨에 출근 길 퇴근 길 온종일 땀 흘리면서

피곤하게 일주일을 보내신 분들이 성당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일주일 내내 학원에 지쳐있던 초등부, 중고등부 친구들이 매일 아침마다 ’엄마 오분만 더‘를 외치는데

이 주말엔 친구들과 놀고 또 쉬어야 하는데 성당에 오기가 쉬웠을까?

이 더위에 어르신들은 하느님 만나러 간다며 예쁘게 차려입고, 또 멋지게 양복을 빼입고서

먼 거리를 한참 걸어오시는 게 쉬웠을까?

일주일을 학업이다, 직장이다, 연애다, 인간관계다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이 성전에 나와 봉사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정말 어여삐 보시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열매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은 물러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고, 우리 구원의 문제가 달린 사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 12,1-2)

 

  하느님은 좋은 나무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의 곁에 붙어 있는다면, 그분 곁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좋은 열매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가 되기 위한 단 한 가지 방법은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라면...”

 

  제가 범계성당 공동체에 머물며 단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친교를 맺고 좋은 열매, 알곡이 되어 구원의 문턱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에 불을 지르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분명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게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두 손 모아 봉헌했던 예수님의 기도로 강론을 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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