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728 다해 연중 제17주일(하루 1440분, 얼만큼 기도하십니까?)
2019-07-27 15:24:15
박윤흡 조회수 805

  우리는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살아갑니다.

우리 교우분들은 하루를 보내며 얼만큼의 시간을 기도에 봉헌하십니까?

 

  오늘 선포된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1. (그분은)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카 5,16)

2.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3.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4. 게세마니 동산에서는 피땀을 흘리시며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루카 22,46)

 

  우리가 주일미사를 봉헌하러 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하느님의 제단 앞에 나오는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왜 안들어 주시지? 난 안 믿을거야!’

‘성당에 나가봤지 뭐해. 어차피 삶은 변하지 않는데.’

‘그 신부님 강론은 재미가 없고 저 신부님 강론은 이미 내가 다 아는 내용이야.’

‘직장이다 가족여행이다 하는 이유들로 주일미사에 빠지니까 고해성사 봐야 하잖아.

고해성사가 부담스러워서 난 그냥 냉담할래.’

‘봉사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냥 주일미사만 잘 지키면 지옥엔 안가겠지 뭐.’

‘성당에 나와서 그렇게 오래도록 기도했는데 내 아이가 인서울을 못했어. 하느님이 계시기는 하는거니?’

 

  수많은 교회 문헌들에서 가톨릭교회가 처한 가장 큰 문제점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세속화’는 하느님, 신앙 그리고 2,000년 역사가 가져 온 교리를 세속적 기준의 잣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속화의 진짜 문제는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선하신 길로 이끌어 주신다.’ 라는 명제를 불신하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문제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녀에게 나쁜 것을 주려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때론 바르게 성장해주길 바라면서 매를 들기도 하는 것이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을 줄 수 있을까?’ 우리 뒷바라지 하면서 따라다니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나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지 않으시기도 하고,

가끔은 거둬가시기도 하는 것이죠.

 

  강론을 마치며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2. 환난과 곤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3. 나의 고유한 사명을 알기 위해서

4.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

5.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6.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7. 악을 멀리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태초의 낙원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쩌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느님을 멀리했기 때문에 스스로 낙원에서 도망쳤고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소외’를 가져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

기도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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