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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농민주일’을 맞아 농민들을 기억합니다.
뙤약볕 아래서 곡식을 추수하는 농민들이 없었다면,
가족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의 밥상에서 끼니를 채우지 못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만큼 오늘은 농민들의 존재에 감사함을 절감하는 날입니다.
‘농부’는 어떤 존재일까요?
농부는 씨앗을 심고 땀 흘려 가꾸면서 열매가 맺을 때까지 조건없이 믿고 기다리며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농부는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는 벼를 보며 겸손함을 다지는 사람입니다.
농부는 씨앗과 생명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농부는 밥 한 숟가락의 정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희망과 나눔, 사랑의 생명, 온 정과 정성을 담은 농부는 바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요한 복음 15장 1절의 말씀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아버지 하느님께서 농부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토마스 머튼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저서 ‘새 명상의 씨’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매 순간, 모든 사건 때마다 자기의 영혼에 무엇인가를 심습니다.
바람이 수없이 많은 씨를 나르듯, 매 순간은 사람의 마음과 의지 한 가운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는 정신적 활기의 씨앗을 가져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우리에게 뿌리십니다.
당신은 그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새명상의 씨, 29)
머튼 신부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는데,
‘과연 우리는 그 씨앗을 받아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나의 욕망과 이기심, 쾌락, 세속적 즐거움을 양보해야 합니다. 곧, ‘나 자신을 떠날’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한다면 모든 일과 매 순간, 나의 자유, 기억과 지성, 의지 안에 말씀의 씨앗을 심을 것이며,
어느 날엔가는 엄청난 수확을 거둘 것입니다.”(새 명상의 씨, 31-32)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한다면서, 그분의 자비를 청하면서 계속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욕망에만 빠져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하시는 거에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원한다면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삶 안에 육화incarnatio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자문할 필요가 있죠. ‘나는 하느님의 사람인가, 세속의 욕망에 빠져있는 사람인가?’
오늘 복음은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입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마르타는 열심히 일하는데 왜 가만히 기도만 하고 앉아 있는 마리아만 칭찬하실까?’
두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이렇습니다.
마르타는 봉사의 직무에 충실하지만 어쩌면 하느님의 말씀엔 귀가 먼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누구를 위하여 봉사하는지, 왜 지금 이 봉사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만 하는 것이죠.
그러니, ‘나는 이렇게 봉사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라는 물음은 당연지사 나오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받을 토양이 되지 못한 마르타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루카 10,39)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마리아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압니다. 우선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거에요.
말씀의 씨앗을 영혼 깊숙이 간직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마리아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마르타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주지만
주님의 발치에 앉아 경청하는 마리아는 ‘하느님 중심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오늘 농민주일을 맞아서 두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경청과 실천을 통해 좋은 몫을 택하는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기를 지향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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