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718 다해 연중 제15주간 목요일(여러분은 어떤 족쇄를 차고 계십니까?)
2019-07-20 18:09:15
박윤흡 조회수 1028

오늘 점심시간에 손님이 왔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에게도 족쇄가 있습니까? 그 있잖아요.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거.

저는 요즘 사회생활을 하고 세상을 알아 갈수록 족쇄가 무거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관계, 출세, 좋은 직장 등등. 모든 것이 제게 족쇄로 느껴집니다.

이거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겁니까? 진짜 자유가 뭔가요?’

 

  저는 우리 교우분들에게도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교우분들은 자유로우십니까? 혹시 나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 복음에 ‘멍에’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합니다.

멍에는 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로 밭을 가는 소가 맬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필연적으로 주어진 짊과도 같은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 멍에를 라틴어 성경에서 iugum이란 단어를 쓰는데 ‘족쇄’라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멍에는 족쇄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직장인들이 지옥철을 타고 러시아워를 뚫고 출퇴근을 하는 것,

학생이 시험지를 마주쳐야만 하는 것,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부모의 운명,

어린이 복사단을 하기 위해 40일 여정을 해내야만 하는 운명... 이 모든 것이 다 멍에이면서 족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족쇄가, 이 멍에가 가벼울까요? 결코 가볍지 않죠.

무겁고 또 때로는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런 묵상을 하시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십자가를 기꺼이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오늘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하신 말씀은 어쩌면 이런 의미 같아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단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소와 멸시를 받았고 심지어 십자가를 지고 처참하게 골고타를 올라야만 했단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못박혔지. 내가 사랑했던 그들로부터 못 박혔단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부활했잖니!’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희망’입니다.

멍에와 족쇄, 십자가가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낼 수 있다는 힘을 실어주시는 희망!

그리고 그 순간에 함께 하시겠다는 영원불멸의 하느님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희망의 하느님을 묵상하며,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으로 강론을 갈무리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성령께서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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