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501 다해 부활 제2주간 수요일(구원관의 역사,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까?")
2019-05-01 08:57:07
박윤흡 조회수 1081

  오늘 복음의 주제를 이렇게 정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합니다.’

  복음의 맥락 안에서 구원과 심판을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심판에서 제외되고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면,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죠.

우리 일상의 삶에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거리들을 마련하지 않게 되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아

구원받게 된다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까?’

 

  2,000년의 역사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사와 교부시대의 구원관은 이렇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전하죠.

신학자 오리게네스와 치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처음으로 표현합니다.

말 그대로, 교회 밖에선 구원받지 못한다고, 꼭 교회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관입니다.

 

  이후, 중세에 이르러, 구원관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엄격주의로 다가옵니다.

플로렌스 공의회(1439-1445)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이방인뿐 아니라 유대인이나 열교인, 이교인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되려 악마를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속에 떨어질 것이다. 오직 교회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만 교회의 성사가 구원이 된다.

선행과 자선을 하거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를 흘렸다 할지라도,

그가 가톨릭교회와의 일치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이렇게 엄격주의적인 구원관은 근대에 이르러 점차 모습이 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유럽의 국가들은 근대에 이르러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며 수많은 문화와 종교들을 마주하며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둘째, 유럽 교회의 분열, 곧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저항하며 뿌리로부터 벗어난 ‘개신교’로 인해 교회분열이 일어났고,

이 사건으로 교회는 승리주의와 자만심을 반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로써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명제를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많은 일들이 교회의 구원관을 변화토록 합니다.

1883년, 교황 비오 9세는 회칙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된 그리스도교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은 희망할 수 없다.

하지만 불가피한 무지로 참된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법과 계명에 따른 삶을 산다면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또 1943년, 교황 비오 12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명시적으로 속하지는 않지만 신앙과 사랑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삶의 열망을 통해 구세주의 신비로운 몸에 이를 수 있다.”

 

  이후, 근대의 막바지에 칼 라너와 이브 콩가르 등의 현대 신학자들은 구원관의 범위를 넓히게 됩니다.

특별히 칼 라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는 ‘하느님의 보편적 계시와 부르심을 받아들여 양심에 따라 선의를 추구하면서

이미 삶을 통해 신앙과 희망,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되려 교회에 몸만 머물며 마음은 교회를 떠나 사는 사람보다도,

이러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구원에 훨씬 가깝다고 말합니다.

 

  1962-1965년에 걸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교 교령과 교회 헌장은 다음과 같이 논합니다.

“본인의 탓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록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에 이끌 수 있으시지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과 성스러운 의무를 아울러 갖는 것이며,

이로 인해 선교활동은 항상 변함없이 오늘도 그 힘과 완전한 필요성을 갖는다.”(선교교령, 7항)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양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있다.”(교회헌장, 16항)

 

 

  결론적으로,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성당에 다녀야합니까?’라고 물어보실 수 있어요.

가톨릭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정도(바른 길)’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의 구원관에 따르면, 가톨릭 이외의 다른 모든 길은 가능성은 있으나‘예외적인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다니는 이유, 선교를 하는 이유,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하는 모든 이유는

바로 이러한 ‘구원관’과 절대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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