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414 다해 주님수난성지주일(용서와 자기비움 그리고 희망, '에고'를 버려라!)
2019-04-13 14:20:51
박윤흡 조회수 926

  용서와 자기 비움(포기) 그리고 희망.

오늘 우리는 주님수난성지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거룩한 성지주일에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교우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용서, 포기, 희망’입니다.

 

  외경에 나온 이야기 한 편을 읽었습니다.

외경이라하면,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외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군가 예수님께 와서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저는 스승님처럼 무소유로 살기 위하여 아무것도 안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그걸 당장 버려라!”

제자는 의아하게 생각하지요. ‘아무것도 안가지고 왔는데 무얼 버리라는 것인가?’

그래서 반문합니다. “어떻게 버릴 수가 있습니까?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럼 그걸 가지고 다녀라.”

 

  이 이야기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없음’을 소유하여라. 너희 ‘포기’를 달고 다녀라. 너의 소유가 아니라, 너 자신을 버려라.

그러면 자유에 이를 것이고 하느님을 볼 것이다.”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전 생애는 ‘에고를 버리는 영적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세상적 시선, 곧 부와 명예, 권력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철저하고도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이젠 오늘 복음 텍스트를 두고서 ‘용서와 포기,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용서’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우리가 없음을 소유하지 못할 때, 나의 에고로 내 속이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줬어! 우리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하면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나열합니다. 물론, 아물지 않는 상처는 용서를 잠식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아야 해요.

예수님은 최측근 12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심지어 제자였던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까지 합니다.

성지가지를 흔들며 ‘이제 드디어 우리 임금이 오셨구나!’했던 사람들도 결국 이렇게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판공성사를 준비하면서 많이 느끼셨겠지만 우리는 일상 안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못박는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용서’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우리가 기억할 첫 번째 주제는 ‘용서’입니다.

 

 

  둘째, ‘포기’, ‘자기비움’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신학생 때, 저에게 가장 큰 주제는 ‘자기비허적 사랑’이었습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정말 자기를 비우는 처절한 사랑을 했다는 것인가?’

 

어느 날은 잠이 오지 않아 홀로 캄캄한 성전에 갔습니다.

십자가상 예수를 보면서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제게 두 가지 열매가 맺혀졌습니다.

하나는 ‘나의 죄를 씻고 나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셨다는 것’.

다른 하나는 ‘예수님은 일생토록 당신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것이 온전히 자기를 포기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까지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모습은 십자가의 처절한 자기비움이었습니다.

 

  ‘너의 없음을 소유하여라, 너의 포기를 달고 다녀라.’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처럼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번째 주제는 ‘포기’, ‘자기비움’입니다.

 

  끝으로 셋째는,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와 자기 포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희망’이 아니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얼마나 힘겹고 어렵습니까?

우리는 용서와 포기를 하지 못해서 죄를 짓고 또 미움과 원망으로 살아가요. 이게 아닌걸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아니야, 나는 모기와 같아서 다른 사람들 피나 빨아먹고 버티는 존재야.’

‘내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어? 오랫동안 악습에 빠져있고 똑같은 죄를 짓고..

그래서 하느님께 죄송해서 성당에도 잘 못오고 어차피 고해성사를 보더라도 또 죄를 지을텐데..

내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어?’

 

  하지만 우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죄인은 천국을 희망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손잡고 도란도란하게 살았던 것처럼,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 나라에 머물고 싶다고 간절한 희망으로 청을 아뢰는 것이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죄많은 너에게도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강론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부활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과 희망이 없었다면 통고의 수난 길을 가지 않으셨을 거에요.

우리 교우분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하고 또 삶의 자리에서 그 길을 걸으며

은총의 시간되시기를 묵주알 굴리며 기도하겠습니다.

 

  “용서, 포기 그리고 희망.

‘너의 ‘없음’을 소유하여라. 너희 ‘포기’를 달고 다녀라. 너의 소유가 아니라, 너 자신을 버려라.

그러면 자유에 이를 것이고 하느님을 볼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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