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413 다해 사순 제5주간 토요일(그리스도의 법은 민주적입니까?)
2019-04-13 08:55:48
박윤흡 조회수 707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50)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대사제 카야파의 대사입니다.

신학적인 접근방법으로 볼 때엔 ‘그해의 대사제’로서 언급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예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요한 11,51)라고

복음은 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학의 공동체적 접근방법으로 본다면,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죽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이며 옳은 것일까?’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서라도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난다고 하시는데

카야파는 한 사람이 다수를 위해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것이죠.

세상적인 이치에서는 아주 당연지사한 이야기입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소위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것이 가장 민주적이고 보편타당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법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누구 하나 잃지 않으려는 보편적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편협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법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쉽게 카야파와 같은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교회 안에 세속화가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명의 희생이 아니라, 한 명을 위해서라도 모두가 희생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온 전체를 내던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지신 그리스도의 투신적 사랑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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