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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은 쓰나 열매는 달다.” 제 동기 신부님의 카톡 프로필 문구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고해성사의 부담과 두려움은 쓸지언정, 하느님께 모든 것을 열어보였을 때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열매는 달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사제로서 고해소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교우분들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느껴질 때엔
직무에 대한 보람도 달게 느껴진다는 의미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로서 성화된다고 하지요.
오늘 교회는 사순 제5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론을 시작하며, 사순 감사송의 한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하시려고 구원과 은총의 시기를 특별히 마련하시어
그릇된 욕망에서 벗어나 덧없는 일을 피하고 영원한 구원을 향하여 힘쓰게 하셨나이다.”(사순 감사송2 : 참회)
‘구원과 은총의 시기를 마련하셨다.’ 이 시기는 바로 ‘사순시기’입니다.
우리가 욕망에 사로 잡혀있다면,
나의 욕심과 야욕에 빠져있다면 은총의 상태가 아닌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하느님께서는 이 사순시기는 마련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자주 봉헌하고 고해성사를 보면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구원과 은총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은총의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이번주간 지역별 판공성사 성실하게 준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두 가지 포인트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을 쓰셨을까?’
복음은 흥미롭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오늘도 예수님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간음하는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자기들의 방식대로 처리할 수도 있었을텐데 예수님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나쁜 의도를 품고 데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몸을 굽히시고 땅에 무언가 쓰세요.
그러다가 일어나서 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리고 다시 앉아서 뭔가 이어서 쓰십니다. 무엇을 쓰셨을까요?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예레미야 17장 13절을 쓰셨다고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예레 17,13)
앞서 말씀드렸지요. ‘나의 욕망과 욕심, 야욕에 빠져있다면 죄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땅바닥에 쓰시면서
이미 욕망과 욕심에 도취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꾸짖으시는 것이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런데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 이것이 나쁜 짓인지 착한 행동인지,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를 합리화해왔던 것입니다.
자신 또한 죄를 지은 나약한 인간임을 알게 되고서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한 명씩 떠나갔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우리 또한 누군가를 단죄하면서 나는 죄짓지 않는 사람인양,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느님 자비의 집인 고해소가 열려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는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
금요일에 가두선교 나갔을 때 한 형제님과 짧지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이 분은 항상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바보처럼 사셨지.
사랑이 뭘까 제게 의문이 많았는데 추기경님이 당신 삶으로 보여주신 것 같아요. 사랑은 조건없이 주는 것이라고...”
‘모르고 안아주는 건 본능이고 알고도 안아주는 건 사랑’이라고 합니다.
간음한 여인은 죄인이었어요. 예수님도 분명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단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고, 나를 창녀라며, 나를 죄인이라며 주변에선 손가락질을 하고 냉대하고 비난을 하면서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인격체로 바라보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이렇게 여인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고 하지요.
“주님, 저를 낫게 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나으리이다. 저를 구원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구원받으리이다.
당신은 제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예레 17,14)
돌아오는 주간은 판공성사 주간입니다.
‘판공은 쓰되,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과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기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의사에게 내 아픈 곳을 다 보여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하느님께 내 영혼을 병들게하는 병균들을 다 내보여야만
하느님께서 그곳에 연고를 발라주실 수 있습니다.
고해소에 들어오실 때 두려움과 걱정, 부담은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참된 영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이번 판공성사, 구원과 은총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의 고백을 다시금 소개해 드리며 강론을 갈무리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낫게 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나으리이다. 저를 구원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구원받으리이다.
당신은 제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예레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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