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406 다해 사순 제4주간 토요일(음모와 계략)
2019-04-05 11:43:12
박윤흡 조회수 875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어떻게든 예수님을 처단하려고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해주지 않는다며, 자신들이 설 자리를 예수님이 뺏어갔다며,

우리가 이토록 잘 해왔는데 왜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고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냐며

불평과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바리사이들과 수석사제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들의 옳지 못한 방향성을 잡아주시고자 했던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이지 하느님을 향한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음모와 계략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한다며 말했던 사람입니다.

니코데모가 옳지 않은 사고를 가진 그들에게 묻습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본인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임을 다 알고 있지요.

헌데 자기들 마음에 내키지 않기에 반기를 듭니다. ‘아니야! 무조건 이런 방식으로 가야해.’하면서 말이지요.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우리는 우리 자신이 품고 있는 ‘하느님 상’ -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만들어 놓은 우상과 같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으뜸 제자인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맡기십니다.

그리고 2,000년의 역사를 가톨릭 교회는 전통으로 이어받아 지금까지 와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의 정신과 교회법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이라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어떤 교부는 교회를 ‘순결한 창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나약함과 죄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있기에 ‘창녀’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순결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가톨릭 교회의 실망스러운 부분을 우리는 직면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이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만 매여 교회를 비난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늘 복음의 수석사제와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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