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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 친구들이 저녁에 찾아 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 만난 친구들입니다.
저녁에 소주 한 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어느새 벌써 결혼 5년차인데 요즘 내가 와이프를 사랑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벌써 첫째는 유치원에 갈 때가 됐고 둘째는 이제 곧 돌이잖아.
집에서 육아하느라 정말 힘들어 보여. 잘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요즘엔 내가 정으로 사는건지 사랑으로 사는건지 잘 모르겠어.”
우리 형제 자매님들은 ‘나의 가정생활’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공감하시는 분도 계시고 ‘저는 사랑으로 살고 있어요!’하며 대답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어제 이런 얘기를 듣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을 후벼팠던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요한 5,42)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은 하느님의 뜻에 불충실하고 제멋대로 살면서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던지신 꾸지람인데 저도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말씀 한 구절이 스쳐갑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
그리고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문득 한 인물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 가장 사랑받던 제자가 아닌,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던 제자 베드로가 떠올랐어요.
베드로의 행적을 살펴보니 흥미로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그분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납니다.
마치 제가 서품을 받았던 것처럼, 또 혼인의 언약을 맺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때로는 ‘물 위에서 의심을 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모습’(마태 14,28 참조) 또한 보여줍니다.
그러다가도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면서 고백을 해요.
시간이 지나고 언제 그런 고백을 했냐는 듯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라는
꾸지람을 듣기도 합니다.
정신을 차렸는지 예수님께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말씀하시니까 또 이렇게 외칩니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르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태 26,35)
하지만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게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베드로는 잠들어 버리죠.
그리곤 결국,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마태 26,69. 70. 74)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이러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사제생활도 그런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흔들리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묵묵히 혼자 울면서 그 길을 따라갑니다.
예수님 옆에 끊임없이 머물러 있었다는 거에요. 우리가 배우자에게 머물 듯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 머물 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종국에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 21,15.16.17)하며
베드로는 처절한 고백을 하고선 결국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형에 처해 순교합니다.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배우자를 미워합니다.’하면서도 누군가 남편이나 아내를 욕하면 속상해요.
‘저는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미 그 자체로 우리는 하느님 옆에 잘 붙어 있고 싶다는 반증의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나약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가정을 축복하시고,
흔들림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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