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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두선교 3일째 날입니다.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께서는 이미 다녀오셨고, 저는 오늘 2단지 가두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김수환 추기경님 얼굴이 새겨진 초대장과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드리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범계성당입니다.”
“어머~ 성당에서 이런 것도 해요? 제가 여기에 20년 살았는데 성당에서 나오는 건 처음이에요.”
“제가 지금 냉담중인데 우리 아이 첫영성체 해야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죠?”
“제가 요즘 종교에 관심이 많아요. 범계역 호수 광장에서 신천지가 그렇게 떠들썩하던데...
어휴 아무리 생각해도 신천지는 정말 사이비 중에 사이비에요.”
“저는 아직 안다니지만 제 남편은 성당에 다니고 있어요.”
“신부님! 저 신자에요. 판공보러가서 뵈요. 오늘 도와드려야 하는데 못 도와드려서 죄송합니다.”
"열혈사제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냉랑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아예 눈도 안 마주치시고 제 길을 가시던 분도 계셨고, ‘성당은 됐고 마스크나 하나 주세요.’하시던 분도 계셨어요.
물론 저도 개신교회에서 가두선교 할 때 주시는 물티슈 잘 썼습니다.
가두선교를 마치고 성당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한 자매님께서 제게 티슈를 주시더라고요.
로만카라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이나 저나 같은 하나님 믿는데 다 똑같지요 뭐.’하시며 주시던 그 자매님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도 교회 다니세요!”
방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0년 전 복음을 전하던 예수님과 제자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제가 오늘 무시당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사람들을 험한 눈총을 오늘 느꼈는데
‘예수가 무슨 메시아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 시절에 선교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죽음을 택하셨을까 싶었어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제게 위로가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요한 5,30)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하느님의 도구’로 사셨는데
저는 저의 힘만으로 이걸 하려니 힘이 들고 상처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나 성찰하였습니다.
본당에서는 가두선교 선포식 이후, 선교 특강을 해왔고 현재 구역을 중심으로 가두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정체성을 잃은 교회’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삶을 채웠던 대부분의 시간은 ‘선교’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 또한 선교하는 본당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