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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는 ‘상선약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왜 노자는 위대한 선을 물에 비유했을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수평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법칙’을 나타내며, 한 마디로 ‘공평’을 상징합니다.
또 물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스며든 곳에 ‘그것’이 되어버리는 완전한 성질도 가지고 있지요.
또한 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에 적응하며 자신을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본질을 잃어버리진 않습니다.
끝으로 물은 대지를 적시며 대자연을 지휘하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물의 속성은 ‘하느님의 속성’과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세례성사 때에 이마에 물을 붓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화를 통해 하느님으로 새롭게 태어나라.’하면서 말이지요.
오늘 복음엔 그 유명한 벳자타 연못의 38년동안 앓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요한 5,6-7)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1. 혼자 들어갈 수는 없었는가?
2. 왜 이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도움만을 바랐는가?
3. 무엇이 그를 두렵게 했을까?
4. 정말로 이 사람은 간절히 바랬던 것일까?
5. 아니라면, 두려움과 막연함 앞에서 38년을 망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묵상해 보면, 하느님을 만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38년이라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그만큼 긴 시간동안
‘성당에 나가야지’ ‘고해성사를 해야지’ ‘냉담을 풀어야지’
‘선교 해야지’ ‘성경필사를 좀 해야지’ ‘다음엔 꼭 성경 공부를 할거야’하면서
우리 또한 벳자타 못에 내려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멈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에 들어간다는 건, 하느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물은 우리 몸에 들어와 우리를 정화하지만
우리는 물에 들어가 하느님 안에 침잠하려는 신앙적 노력 또한 요청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38년을 앓던 이가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지요.
우리 삶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은총의 사순시기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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