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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상황극이 떠오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분의 권능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마치도, 열혈사제의 광신도적인 한 장면 깨달음의 우따(우리는 따릅니다.)를 연상시킵니다.
헌데 우리는 질문해야만 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치유를 진정으로 믿는가?’
복음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모두가 ‘믿습니다!’하면서 대답했지만 실제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치도 우리가 예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해서
냉담을 하거나, 철학관에 가거나, 개종을 하거나 사주팔자와 같은 점을 보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지요.
의심하는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루카 11,17)
우리가 만약 예수님과 영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그분의 선하신 이끄심을 믿지 못하고 표징만을 바란다면,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에이, 뭐 이번 한번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내 뜻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받을 수 없다고 역설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 나약한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는 방법을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예수님께서는 ‘Follow me. 나만 믿어. 내가 십자가 질테니까 나만 잘 따라와.’ 하시면서
우리가 철저하게 당신의 최측근의 자리에 서야만 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4복음서를 보면 12명의 제자들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두 명이 있지요.
한 명은 예수님의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이고 다른 한 명은 예수님께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더 사랑했던 것일까요? 그런데 왜 하늘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을까요?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더 사랑했던 제자'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묵상해 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번 사순시기를 보내며, 우리 모두가 홀로 처절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의 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할 때,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와 있을 것’(루카 11,20)입니다.
우리가 먼저 계약을 어길지언정, 예수님께서는 결단코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으로 강론을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 편에 서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애매함이 없습니다.
하나의 싸움이 있고, 우리 모두의 영원한 구원이 그 싸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악마의 속임수와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 순진해서만은 안됩니다.
당신이 만약 예수님 편에 서 있지 않다면 당신은 그분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악마는 존재한다(The devil exists), 디에고 마네티 엮음,
안소근 옮김, 가톨릭출판사, 201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