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327 다해 사순 제3주간 수요일(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은 사랑, 사랑이 없다면..)
2019-03-28 10:46:13
박윤흡 조회수 1022

  오늘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당시 예수님의 행보가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서 율법과 예언서 말씀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이 무슨 말씀일까?’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마태오 복음 7장 12절을 보니 이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문자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그저 주일미사의 의무만을 다한다거나 판공기간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만으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언서의 말씀을 내 안에서의 신앙적 재해석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 또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완성’은 율법과 예언서 안에 담긴 존귀한 정신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상의 삶 안에서 그 정신을 살아내야 할 자율과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난을 앞두시고선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15,12)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삶’에 있음을 역설하십니다.

끝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묵상하며 강론을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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