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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 베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던가,
용서할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그에게 안겨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이 ‘용서’에 대하여 장황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뉘앙스로 보아
베드로는 씩씩거리며 ‘저는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어요! 일흔일곱 번이라니요! 제 얘기좀 들어보세요!’ 라는
분위기를 풍겼을 수도 있습니다. 장면을 떠올려 보면 흥미로워요.
왜냐하면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헌데 예수님은 수도 없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 들려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너는 용서받았으면서 왜 너는 용서하지 않느냐?’하는 물음이 이 텍스트의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주님의 기도를 봉헌하며 우리는 고백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먼저 용서할 때에 우리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매일 미사때, 묵주기도를 할 때,
그 밖에 주님의 기도를 고백하며 되뇌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아야 하겠지요. 단순히 주저리 주저리 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나의 죄를 고백하며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청하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용서를 하오니 용서하지 못했던 저를 자비로운 눈길로 굽어보시고
저를 용서해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는 화해의 성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청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나만 용서받기를’ 바랄 때가 있어요.
내 마음은 아직도 분열, 미움과 분노가 타오르고 있는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면서 나만 깨끗해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실상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용서할 때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이죠. 이 사실은 진리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과 분노로 누군가를 대할 때 우리는 악마의 종살이 노릇을 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번 사순시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은총의 상태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할 때 우리는 은총의 갑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