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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교회의 긴 역사는 성 요셉에 대하여 ‘소박한 삶을 꾸렸던 나자렛의 목수’이자
‘하느님을 따랐던 의로운 사람’이라고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9)
이 구절을 묵상해보았을 때, 요셉이 마리아를 사랑했을까요,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얼핏 보면 사랑하지 않아 ‘파혼하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문화 안에서 여성이 미혼인 상태로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땐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았다고 해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알콩달콩 살고 싶었지만
그런 형벌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파혼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요셉은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 1,20-24)
문장은 아주 단순하게 결과론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하지만 꿈을 꾸기 전 요셉의 고민, 꿈을 꾸고 난 후의 요셉의 고민은
아주 치열했으리라 묵상해 봅니다. 꿈을 꾸기 전, 세상적인 방식으로 요셉은 생각했습니다.
마치 A를 넣으면 B가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 논리로 파혼을 결정했었던 것이지요.
헌데 하느님의 개입은 요셉을 더욱 더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해야겠구나!’하진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정말일까? 정말로 파혼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지 않을까? 내가 꾼 꿈이 사실일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정말로 하느님의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수많은 의문과 두려움들이 요셉을 사로잡아 요셉은 결정장애에 빠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혼란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겠지요.
‘어떻게 요셉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꿈에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여도 무시하고 제 뜻대로 할 수 있었는데...'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로마 4,18.22)
요셉의 결정적인 선택은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 불리는 이유는
목숨을 내어놓을 두려움 앞에서 하느님께 대한 충절한 믿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요셉이 품었던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를 우리는 매일 미사에서 듣게 됩니다. 미사 중에 사제는 이 기도문을 봉헌합니다.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 요셉과 성 마리아, 모든 사도들과 성인들 모두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을 품었다는 것을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듣고 또 선포합니다.
이만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회는 오늘 대축일을 통해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랑도, 희망도 따라옵니다.
자식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자식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믿기도 하지요.
그만큼 믿음과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믿어주시고 동시에 사랑해 주십니다.
또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하느님 친히 기도하십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두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그런 하느님께 우리도 충절한 믿음과 정성 가득한 사랑, 그리고 그분 안에서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희망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복됩니까? 하느님이 우리를 보고 희망하신다니요!
그렇기에 우리도 하느님을 보고 희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가정 안에서 형제님들! 요셉 성인을 닮으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자매님들께서는 형제님들이 조금은 미울 때가 있더라도 요셉 성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닮음과 발견 안에 성가정의 은총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