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312 다해 사순 제1주간 화요일(예수님,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2019-03-12 22:58:46
박윤흡 조회수 1367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바로 전 대목에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을 하실 분들은 지난 주일 강론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신기합니다.

‘내가 청하기도 전에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셨다면 이미 주셨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반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범계성당에 처음 왔을 때, 중고등부 교사회 전체가 그만 두었습니다. 첫 부임지에서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교사회를 어떻게 꾸려야하는가' 라는 생각보다도

'어떻게 하면 교사를 한 두 명이라도 세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제야 1년쯤 지나니 조금이나마 그 숨통이 트였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올해 2월쯤 되었을까요? 초등부 교사회가 전부 그만 두게 됩니다. 다시 막막해 졌습니다.

초등부 교사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일학교를 없애야 할까, 내가 혼자 교사라도 해야할까 등 수많은 고민들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초등부 교사회는 이제 부모교사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간 고생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앞으로 함께 하실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 과정 안에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한두 명에게 교사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본 것이 아니겠지요.

또 기존의 교사들에게도 남아달라고 간곡히 부탁도 해보았습니다. 벼랑 끝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내게 필요한 것이 충족된 교사회의 모습이라면 왜 하느님께서는 내게 그런 표징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본당 청년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관할구역 밖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청년들을 모두 각 본당으로 보낼 취지로 타지역 정리를 하였습니다.

지난 1년간 정을 쌓고 마음을 나눈 청년들이기에 제 마음 또한 편치 않았고 찢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이 교회의 법이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솔직히 제가 원하는대로 모든 것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면

그제서야 하느님을 믿으리라 싶은 유혹도 잠시나마 제 안에 스쳐갔습니다.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역경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헌데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의 뜻이 아니죠. 하느님께서는 이 고비의 순간들을 통해서 제게 무언가 말씀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내가 바라는대로만 되기를 바랬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었는데 나는 십자가를 지겠다고 서약만 했지,

십자가를 지고자 일상 안에서 노력하지 않았구나!

불평과 상처만 남았던 것인데, 사실 그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려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스스로 내게 남긴거였구나.

하느님께서 나를 선하신 길로 이끄시리라는 믿음이 부족했구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오늘도 곰곰이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제가 당신께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제게 바라시는 길로 저를 이끄소서.

분명 그 길에 당신의 뜻이 있을지어니 그 길을 따라갈 때에 저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받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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