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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ulus se non videns, alia videt
눈은 자기 자신은 못 보면서, 다른 것은 본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오늘은 과거에 써놓은 제 일기를 잠깐 나누고자 합니다.
2013년 5월 24일
“종교학 세미나 리허설을 6교시 후 하기로 약속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잡혔던 약속이다.
막상 하려니 오늘따라 왠지 더 피곤하고 짜증이 몰려오는지. 결국 방에서 노트북을 들고 다시 도서관에 갔다.
프레젠테이션을 수정하고 동기를 기다렸다. 4시 반쯤 동기가 왔다.
모임 장소는 학사동 1강의실. 소요시간을 확인하고 보완할 점을 메모하고서 끝이 났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나의 마음이 불편했을까?’
나의 담당은 프레젠테이션인데 약속한대로 해놓지 못하였다.
여러 핑계를 대며 구차하게 내 방어막을 치는 것이 싫었고 내게 올 화살들이 두려웠다.
나의 판단으로 볼 때, 동기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거기서 오는 열등감과 질투심.
다른 한 명은 인터넷 접속이 안된다며 그것만 끄적끄적 대고 있었다.
‘나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우월감이 평소 내 마음에 자리했기에 나는 그 동기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책임감 결여가 불러온 결과인데 이러한 나의 불찰은 나와 내 이웃에게까지 피해가 간다.
오늘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루카 6,42)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새롭게 변모시켜주시길 청하며 오늘 밤 잠을 청한다.“
6년 전 신학교에서 작성했던 일기입니다.
당시의 생각과 마음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중심적인 저 자신’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부터 판단과 단죄로 형제들을 대하였고, 시기와 질투를 품고서 형제들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형제에게는 ‘내가 너보단 낫다.’하는 식의 교만한 우월감을 품었던 것이죠.
우리 교우분들은 일상 삶의 자리에서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우리가 만약 ‘나무가 된다면’ 어떤 나무이고 싶으십니까?
나쁜 나무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좋은 나무이고 싶으신가요? 저는 ‘좋은 나무’이고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무르익은 열매를 내어주고 싶고, 또 상황에 따라 그늘이 되어 안식처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햇빛을 받아야 하고 좋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겠지요.
헌데 우리가 하느님의 빛에 조명되지 않고 어둠을 좋아하며 나쁜 생각과 행동, 욕설을 습관처럼 한다면
우리는 나쁜나무가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 영혼과 육신은 그 부정적인 것들을 기억하고 체화합니다.
또 누군가를 욕하면 그 생각과 말이 내 머리와 귀로 들어와서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너’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합니다.
원죄로 물든 우리는 나약하게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타고 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내면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미세먼지로 가득차서 혼탁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그런 우리를 정화시켜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빵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성체를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성찰과 회개를 통해 거듭거듭 하느님의 심장을 장착하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심장을 나누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십자가를 생명나무로 변모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청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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