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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모님께서 신앙의 유산을 제게 고스란히 물려주셔서 가톨릭 신앙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학생 때 큰 화두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종교인인가? 아니면 신앙인인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묻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으세요?’ ‘저는 천주교 성당에 다닙니다.’
헌데, 그저 천주교 세례를 받고 성당에 발을 담그는 정도라면 종교인일 것이고,
진정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성경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앙인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 식별은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세례성사 예식 중에 ‘환영 인사’ 부분이 있습니다. 사제와 예비자들이 주고받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신앙이 당신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
이어서 사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곧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여러분이 세례를 청하면서도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의를 갖지 못했다면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 이야기(마르 10,17-27; 루카 18,18-27; 마태 19,16-26)를 다들 잘 알고 계시지요?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이 부자 청년이 왜 굳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려고 하였을까?’
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불행하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이 청년이 행복했다면 예수님도 필요없었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도 물어보지 않았을 거에요.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불행한 것이죠. 왜냐하면 그 청년은 하느님을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잘 읽어보시면, 행복한 사람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반면, 불행한 사람은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들이라고 하죠.
흥미롭게도 우리는 항상 부유하고 배부르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아픔도 없이 언제나 기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합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불행한 사람’은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에 ‘하느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한편으론 성당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부자 청년처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의문만 품을 뿐 하느님을 믿지 못해서 투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고 말씀하시죠. ‘불행하여라,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 마디로,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 사람’입니다.
내가 조금 가난해지고, 조금은 굶주릴지라도 내 것을 기꺼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
상처와 아픔이 곪아서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삶이 온통 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나는 왜 성당에 다니는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공통적으로 느끼시는 점은 아마도 ‘행복하기 위해서’겠지요. 우리 모두 행복을 찾아서 이 성당에 찾아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참 행복이 아닌 세상의 행복이 주는 선악과를 따먹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신앙을 청하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고 있을까? 아니면 하느님 나라를 바라고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공동체가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것에 내 모든 존재를 투신하기 보다도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행복한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