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205 설(진정한 황금 돼지해를 살아갑시다!)
2019-02-04 21:30:44
박윤흡 조회수 1190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는 어느새 벌써 세 번의 새해를 맞이합니다.

신앙적으론 대림시기를 맞으면서 ‘다해’라는 새해를 맞았고,

1월 1일 양력 새해를 보냈으며 드디어 오늘 세 번째 ‘음력’새해인 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우분들 모두 새해에 영혼과 육신의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축복을 청하겠습니다.

 

  올해가 무슨 해인지 다들 아시죠? 잘 아시다시피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 돼지해’입니다.

‘돼지’는 한국 문화에서 ‘풍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돼지꿈 꾸었다’하면 복권을 사는 문화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풍요로움을 상징하기 때문에 ‘복’을 내려줄 것이라는 종교적 차원의 민속문화입니다.

이토록 복이 넘치는 해엔 새해인사도 특별합니다.

‘웃으면 복 돼지요’, ‘부자 돼지요’, ‘행복하게 돼지요’, ‘주님만 믿으면 돼지요.’하고 인사한다고 하죠.

 

  어떤 신자분에게 메시지가 하나 왔어요.

‘신부님, 황금돼지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 돼지고기 많이 드시고 돼지같은 우직한 모습을 간직하세요.

누군가에게 먹힘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주는 돼지처럼 복스러운 성인사제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복을 퍼주는 돼지, 기쁨을 주는 돼지, 행복을 선물하는 돼지.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 그런 '돼지의 영성'을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지금 이 시간, 다른 돼지를 품고 있는 두 부류의 인물상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첫째, ‘청년편’입니다. ‘어른들 잔소리 피하면 돼지’

  뉴스를 보다보니, 이런 게 있대요. ‘명절대피소’

말 그대로 명절로부터 대피하려고 가는 곳이죠. 여기 간식은 이름도 ‘비상식량’이라고 합니다.

‘명절에 왜 이곳에 있느냐’라는 물음에 청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또래 사촌들은 모두 대기업에 취업해서 조부모님들께 용돈을 드리는데

나는 용돈을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모임을 피합니다.’

‘명절을 보내고 오면 구직의 기준이 흐려지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돼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잘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중인데

어른들은 자꾸만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취업하라고 말씀하세요.’

 

 

  명절 때 오랜만에 친척 어르신들을 뵈면 취업은 했는지,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건지

묻은 질문에  진저리가 나서 명절을 대피한다는 것이죠.

어르신들은 걱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실제 청년들은 부담과 자괴감으로 그 표현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이 명절에 이렇게 외치는 거에요. ‘어른들 잔소리 피하면 돼지’

 

 

  둘째, ‘아내편’입니다. ‘잠깐만 버티면 돼지’

  명절이 되면 가사 일을 누가 다 합니까?

명절이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 소중한 시간인데

아무리 즐겁고 싶어도 즐겁지 못한 이유는 ‘남편의 명절 노동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명절 노동은 형제님들 거의 안하시고, 대부분 자매님들이 하시죠.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하시고 식사하고 나면 손하나 움직이자 않는 모습에 우리 자매님들이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서 자매님들은 이 시간에 이름도 붙이십니다. ‘명절 노동’

기뻐할 수 없는 잔혹한 시간, 그래서 속으로 말씀하신대요. ‘잠깐만 피하면 돼지’

 

  그러다 보면, 이런 돼지도 등장합니다.

‘안 만나면 돼지’

‘안 보면 돼지’

‘끊어버리면 돼지’

‘남남 돼지’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지난 한해 수고 많았다 격려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해에 우리 가족 마음을 모아 행복하게 잘 살자고 서로를 응원하는 이 명절에

우리는 ‘황금 돼지’가 아니라, ‘아픈 돼지’를 키우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당연하게 ‘너’에 대한 배려없이 내키는 대로 상대를 대하는 우리의 습성 안에서

나는 편할지 몰라도 내가 편한 만큼 분명 상대방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결국 안 만나고, 안 보고, 끊어버리고 끝내 남남이 되어버리는

상처만 남는 명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 ‘황금 돼지해’는 60년 만에 돌아온다고 하지만,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겁의 시간’을 희망하고 고대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살아가시는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겠죠.

‘사랑의 시간’을 우리도 닮아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시간이야말로 곧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복이 충만한 사랑과 영원의 시간을 사는 올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독서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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