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204 다해 연중 제4주간 월요일(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2019-02-04 00:13:01
박윤흡 조회수 967

  오늘 복음에는 신앙적 관점으로 보아 ‘두 부류의 인간상’이 소개됩니다.

 

우선 하나는 ‘더러운 영이 들렸던 사람’입니다.

‘들렸던’이라며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쇠사들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린 채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던 사람’(마르 5,4-5)이

이제는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체험하게 된 ‘주님께서 해주신 일과 자비’(마르 5,19)를 입고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배려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체험하고서야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마르 5,15)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하느님 체험을 통해 ‘낙원의 회복’, ‘하느님 모상의 회복’을 이룬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변인’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과 마귀들린 이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하느님의 권능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은폐된 마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지 않고

되려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마귀 들렸던 사람’을 왕따시켰던 이들이기때문입니다.

 

 

  두 부류의 인간상이 보입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단 하나입니다.

전자에 대하여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마르 5,18)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치부까지도 다 드러났지만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에 대하여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하죠.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마르 5,17)

 

  결과적으로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통하여 당신의 업적을 드러내십니까?

바로 ‘마귀의 영이 들렸다가 회개한 사람’이죠.

자기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서 드러내지 않으시고, 철부지에게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부류인가요?

‘죄가 없다’며 고해성사를 안보는 경우도 많죠. ‘주일미사봉헌’만 잘하면 신앙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질타받지 않으면 나는 성덕이 뛰어난 거룩한 사람이라며 영적 교만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죠.

 

  우리는 곰곰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죄인’에게서 드러난다는 것,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은총의 시간을 살면서도 언제나 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

우리는 참된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그토록 처절한 회개를 통하고 나서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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