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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당 앞에서 형제님 한 분이 서성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모상을 물끄러미 보시다가 성당 문을 열었다가 닫기도 하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여쭈었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도와드릴까요?” “
신부님, 저는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지낼 때 세례를 받으려고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을 했었는데
등록만 하고 나가지 않았어요. 아무도 저를 신경써주지 않아서 그런지 발길이 닿지 않더라고요.
성당에 다니고는 싶은데 그 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서 며칠간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좀 두려워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서 저 혼자 할 수 없는데
지난번처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으면 또 발을 못붙이고 결국 성당에 다니기 어려울까봐 그것이 좀 두렵습니다.”
공감하실련지요? 오랜 시간 성당을 다니신 분들은 공감이 조금 어려우실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가슴 한 곳에 ‘성당’이라는 곳은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도 잡지 않는다.’는
뭔가 개신교회와 다른 성당철학을 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수님 시절 당시, 유다인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마치도 ‘신천지’에서 끊임없이 주장해오는 구원의 방주가 허락된 인원 144,000명을 외치는 꼴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자기들만의 우월성에 갇혀서 자신들이 온 세상의 주인인양 행세하였고 자신들의 방식이 아니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자신들에게만 내리지, 다른 이방인들에게는 뻗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하느님보다 자신들이 위에 서있는 ‘진정한 고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다인들을 상대로 ‘엘리사’와 ‘엘리야’의 기적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두 예언자를 통해 드러난 기적은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방인’에게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갖고 있었던
‘우리가 최고야!’, ‘우리만 구원받을 수 있어!’, ‘우리가 주인이야!’라는 통념을 깨부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다음의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하느님의 품은 인간의 판단으로 울타리를 칠 수 없는 우주와도 같이 넓다는 사실,
성당에 다니는 우리들만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품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
하지만 아직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마치 이런 것이죠. 나는 첫눈에 반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눈여겨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아직 모르는거에요.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선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쟤를 정말 사랑하는데 그걸 좀 알 수 있도록 너가 도와줘’라면서 우리에게 속삭이시는 거에요.
관계를 이어달라는 부탁을 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선교를 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선교하지 않을 때 우리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나자렛 사람들처럼 소위 ‘고인물’이 되어서
하느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습니다.
“교회는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
그런데 선교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 녹록치 않아요.
우리 신자 공동체 범주를 벗어나서 누군가에게 ‘하느님’이야기를 한다는 거 굉장히 두렵고 떨립니다.
막연하기도 하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고, ‘실적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도 되죠.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늘 1독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면서 용기를 불어 주십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예레 1,5.17.19)
하지만 단순히 용기만을 갖고 선교를 하기엔 조금은 무모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오늘 2독서를 통해 선교의 방법론까지도 명확히 말씀해 주십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1코린 13,4)
이제 오늘 강론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만의 구원을 위한,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 각자가 움직이는 하느님의 교회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의 프로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더불어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 명확히 말씀해 주십니다.
성당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벗이 되어주고, 서로가 서로를 함께 이끌어주면서
우리 모두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희망합니다.
“교회는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