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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주님 봉헌 축일’을 보냅니다.
이 축일은 마치도 사제들에겐 ‘사제 성화의 날’,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의 축일’, ‘서품 기념일’과도 같이,
수도자들에게 그런 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수도자의 삶은 곧 ‘봉헌 생활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생활하는 분들이 바로 교회의 심장이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수도자입니다.
수녀님과 수사님들이시지요.
오늘 봉헌 축일을 맞아서 큰 역할을 한 복음 속의 인물 ‘시메온’을 묵상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22)
상상해 보세요. 나자렛의 소박한 가족이 하느님께 첫 아들 아기 예수를 봉헌하기 위해 약간은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탈출 13,2)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정결례를 거행하러 온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한나’와 ‘시메온’을 등장시킵니다.
‘시메온’이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들으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의 의미에 걸맞게 복음은 시메온에 대하여 “의롭고 독실한 사람”(루카 2,25)이라며 묘사합니다.
이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가난한 이’, ‘의로운 이’, ‘경건한 이’라고 부르는,
하느님을 믿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희망하는 신앙인을 가리킵니다.
시메온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이지요.
“그(시메온)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루카 2,28)
그리스 전통에서 이 시메온은 ‘테오토코스’Theotokos(Theodochos), 곧 ‘하느님을 받아 안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받아 안고서, 시메온은 이렇게 노래합니다(성무일도 끝기도에 나오는 찬가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9-32)
노랫말을 곰곰이 묵상해보면, 인생의 황혼녘에 안녕을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삶의 애수를 노래한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봉헌되심’으로 인하여
평화를 입은 새로운 출발, 구원에 대한 희망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세상을 노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봉헌되심으로 우리는 시메온의 노래 내용을 선물받게 됩니다.
평화를 입은 새 출발, 구원에 대한 희망, 새롭게 시작된 세상을 말입니다.
주님의 봉헌되심은 우리의 희망과 구원, 새로운 세상을 위한 사랑의 선물임을 기억하는 포근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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