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128 다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하느님을 만난 사람)
2019-01-29 21:11:08
박윤흡 조회수 966

  오늘 교회는 위대한 학자, 성덕의 금자탑, 신학의 사령탑이라고 불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를 기억합니다.

이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성인을 표현하는 수식어와 닉네임이 많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 문화 안에서 엄청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분의 영성과 이성적 고찰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인간 삶을 다루는 수많은 문화의 프레임 안에서 아직까지도 직접 인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승에서 살아 계실 당시에는 엄청난 매력을 소유했던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순수한 ‘신앙적 진리’와 더불어 아퀴나스는 ‘자연 신학적 진리’도 있다고 논증을 펼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두 가지로 과거에 믿음과 계시만을 강조했다면

아퀴나스는 그와 더불어 이성과 감각을 통해서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배웁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 뿐 아니라, 하느님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사기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느님을 잘 모른다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교회를 통해 계시하신 진리이신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알고자 해야 합니다.

묵묵히 묵주알을 잡고 기도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만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퀴나스 성인께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신앙적 진리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집필하고 나서 모든 것을 불에 태웠다고 하죠.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불태웠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렇다고 우리도 집 안에 있는 신앙, 신학 서적들을 불태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도 그러한 단계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세례성사의 은총을 통해 받았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갈망, 지복직관의 현재화를 위하여

도하고 공부하는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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