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90125 다해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나 자신의 회심을 위하여)
2019-01-24 18:53:33
박윤흡 조회수 1132

  오늘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회심,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았던 바오로가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전존재적 변화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회심’은 새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오늘 회심 축일을 맞아 집중하게 된 사도 바오로의 위대함은 두 가지로 사료됩니다.

  첫째, ‘회심’입니다.

갈라티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갈라 1,13-14)

 

  바오로는 엄청나게 독실한 유다교의 신자였습니다. 유다교를 등질 때 어떤 기분이었겠습니까?

함께 공동체에 머물던 이들은 배신감도 느끼고, 아쉬움과 불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새롭게 변화됩니다.

과거의 문화와 종교, 습관과 그 밖에 모든 자기 삶의 정신, 주체 등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향한 삶으로 회심한 것입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첫 번째 위대함이라고 묵상해 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둘째, ‘바오로 서간’입니다.

사도행전 뒤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은 엄청난 분량이면서도 주옥같은 말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회심한 바오로는 일평생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수많은 곳을 다니며

그곳 신자들과 만남을 갖고 서간을 작성합니다.

단한 열정이 아니라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부분이죠.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갈라 1,11-12)

인간적 겸손까지 갖춘 바오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갈라티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5-16)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오늘 독서 말씀에 등장하는 다마스커스에서의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회심의 체험이죠.(오늘의 독서를 꼭 읽어보세요.)

이 사건을 통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아쉽지 않은 것, ‘예수님과의 만남’이 참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바오로 사도가 회심하기 전의 모습처럼, 나도 모르게 주님을 박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성찰해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헌데, 바오로 사도가 회심할 수 있었던 건 물론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지만 이 고백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 바오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라는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주님을 박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것을 앎으로부터 회심할 수 있음을 사도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껍데기 신앙이 아닌, 진정한 회심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어린 부르심을 느끼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거듭나는 우리 범계성당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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