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126 나해 연중 제34주간 월요일(과부의 헌금)
2018-11-26 16:28:07
박윤흡 조회수 1007

 오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과부의 헌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단순히 ‘예물을 많이 봉헌해야 한다.’라는 얘기로만 이 유명한 과부의 헌금을 묵상할 순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넣었다’고 하는 과부의 마음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어떻게 과부는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과부는 어제 우리가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보낸만큼 내 삶의 주인이시며

나를 이끌어주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의탁한다는 전적인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나는 가난한 과부이며 그렇게 홀로 자식들을 키웠는데, 그들마저 자기 삶을 찾아 떠나버린 채 혼자 남은 나의 삶.

나는 어려움과 갈등 속에 겨우겨우 살고 있는 과부이지만.. 하느님이 계시기에 나는 내 삶에 희망이 있어.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까.’

 

  이런 믿음이 과부의 헌금을 촉발시켰던 전적인 믿음이 아니었는가 묵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삶 안에서 하느님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왜 도대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을 원망해도 그분은 침묵하십니다.

그럴 때면 신앙에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가정을 위하여 기도를 해도 하느님은 변화를 주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피를 흘리는 십자고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때면 힘들고 지치고 신앙생활을 왜 해왔나 싶을만큼의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솔직한 우리들의 나약한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부도 분명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나를 과부로 만드신 하느님을 원망하고, 이 모든 것을 다 봉헌할 때에도 의심이 들고

당장 오늘 저녁식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을 만큼의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깁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이 되야지.’

맞는 말이죠. 돈을 비롯한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 우리는 항상 놓여 있습니다.

허나 그것이 집착이 되어버릴 때 우리의 마음은 공허합니다.

 

  과부의 헌금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왜 그 과부를 칭찬하셨는지,

왜 2,000년 전 보잘 것 없는 과부가 봉헌한 헌금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성경의 이야기로 전해져오고 있는지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 안에는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삶과 신앙을 접목시켜 살아나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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