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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 교회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동료순교자 대축일’과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옵니다.
안드레아 둥락 신부님은 베트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여 사명감을 가지고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의 박해와 같이 수십 차례의 박해령이 떨어졌고,
약 13만명의 신자들이 순교를 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둥락 신부님은 1888년 6월 19일 하노이에서 참수형에 이르는 순교를 하게 됩니다.
100년이 지난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둥락 신부님과 동료 순교자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리십니다.
한국의 성인들도 1988년에 시성식이 있었다는 점은 베트남 교회와 한국 교회의 닮은 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1. ‘한국의 순교성인들과 순교복자들, 베트남의 안드레아 둥락 신부님을 비롯한 성인들과 무명의 순교자들은
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증거하겠다며 순교의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가?’
2. ‘배교하고서 편하게 살면 될 것은 도대체 하느님이 누구시길래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바칠 만큼의 매력을 가지셨는가?’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과 예수님의 ‘부활논쟁’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 20,38)
단도직입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모든 순교자들은 바로 이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내세에서 떵떵거리며 살기보다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더욱 컸던 것이겠지요.
일시적으로 흘러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해주실 부활의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투신했던 것입니다.
위령성월의 마지막 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오늘 기념하는 순교자들과 더불어 오늘 복음의 말씀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사제는 미사 중에 기도합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이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갈망할 때에 비로소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첫 눈을 보면서 묵상합니다.
하늘하늘 아름답게 땅을 수놓는 눈방울이지만, 가랑비에 옷젖듯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져 버리는 눈.
어쩌면 우리 삶이 이 눈과도 같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희망을 두어야 하는 분은 영생의 하느님이심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