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024 나해 연중 제29주간 수요일(참된 달란트는 '나 자신'입니다.)
2018-10-23 23:55:19
박윤흡 조회수 1070

  인간의 태어남은 모름지기 ‘세상에 어떤 득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녀출산, 사회를 위한 공헌, 가정을 위한 헌신,

세상의 구원을 위한 몫, 만인의 평등과 평화를 위한 자기희생 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득이던 간에 모든 인간은 전존재를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면서 투쟁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씀이겠죠.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이 말씀을 조금 다르게 본다면, 누구에게나 하느님께서는 ‘무언가를 위해 어떤 것을 맡기셨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와 습관, 전문성에 따라서 어떤 것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은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달란트가 많아보이거나, 비교적 달란트가 적어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데 그 달란트라고 하는 것 또한 ‘세상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겠죠.

말을 잘한다던지, 노래를 잘한다던지, 글을 잘 쓴다던지, 운동을 잘한다던지 등

여러 가지 달란트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언젠가는 소모되는 것들입니다.

정작 우리의 ‘존재다운 달란트’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존재다운 달란트’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나 자신’ 존재 자체가 하늘 나라의 달란트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적인 시선으로 능력의 유무로 파악되는 달란트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거나 존재 자체로서의 힘을 실어주는 능력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달란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전존재를 바쳐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이를 구원의 문턱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어 맡기셨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바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처럼요!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비단 아드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맡겨주셨어요.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니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한 존재로 당신을 던지셨듯이,

나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내 이웃에게, 성당에서 만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나 자신 또한 투신의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투신이야말로 ‘하늘나라를 향한 참된 준비’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투신은 부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이해되는 달란트가 아니라,

나 자신을 달란트 그 자체로 이해하고서 이웃을 향해 투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

부활의 희망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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