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복음의 기쁨
많은 분들이 의문을 품고 계시고 또 질문을 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이나요? 하느님을 보셨습니까?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죠?’
정말로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이다!’하고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실제로 2,000년 전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지 못하겠다며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도 그러했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눈에 보인다면 하느님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언제든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함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제자들은 인간의 힘만으론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초월적인 힘을 체험한 후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3-24)
보는 것과 듣는 것.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보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우리는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느님!’ 여기에 실마리가 있는 것이죠.
얼마 전 축일을 지냈던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10월 4일)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는 새와 나무와 하늘과 땅과 세상의 모든 창조된 것들과 대화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게도 하느님과의 만남을 갈망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창조된 대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특별히 창조된 나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귀 기울였기에
프란치스코는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그분의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동시에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우리의 영적 시각에 보이는 분이시며 항상 말씀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참으로 내 삶에 존재하신다.’하는 믿음이겠죠.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참 기쁨이 우리 삶에 자리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