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1003 나해 연중 제26주간 수요일(하늘이 열린 날, 참된 보수와 진정한 진리는?)
2018-10-03 17:58:31
박윤흡 조회수 973

 

  하늘이 열린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언젠가 ‘교회는 진보냐, 보수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세마나 시간에 토론을 했었습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교회 안의 악습과 폐단을 묵인하면 보수고,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고 사람들의 삶에 깊게 관여하면 진보인가.’ 하는 주제였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어느 하나만 있을 때엔 결코 효력이 없고

언제나 함께 있을 때 그 시너지효과를 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보수는 무엇이며 참된 진보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절대적 진리이자, 진정으로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기에,

오늘 예수님의 대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정신과 신앙의 본질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A와의 대화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스승님을 따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말씀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오직 하느님께만 기댈 수 있는 처지’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께만 기댈 것!’

 

B와의 대화입니다.

“나를 따라라!”(루카 9,59)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

 

  감사기도 2양식에 이런 기도문이 나옵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그러니까 죽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의 뜻에 따라 거두신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미련을 두지말고,

그보다 더 중요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죠. 

바로 이 선교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은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쓰기보다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C와의 대화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61)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세상적인 것과 하느님의 것 사이에 끊임없는 식별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급한 세상의 일들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것을 쫓는다는 것이 그리 쉽게만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하느님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이렇게 세 명의 대화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진정한 보수와 신앙인의 자세를 배웁니다.

첫째, 하느님께만 기댈 것.

둘째, 세상의 삶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 투신할 것.

셋째,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하느님을 선택할 것.

 

  인간의 삶에서 진보와 보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늘 공존해야 합니다.

허나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느 무엇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진보와 보수인 이유는, '인간의 본질과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시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신앙의 진리,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 하나,

‘예수님의 삶의 모습과 방법론’임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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