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916 나해 연중 제24주일(실천하는 신앙은 십자가 안에서 빛이 납니다!)
2018-09-15 14:46:45
박윤흡 조회수 1067

  돌아오는 월, 화요일은 신학교에서 10년간의 수련을 무사히 마침에 감사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신학교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은 주일이었고, 복음은 오늘 복음과 같았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성체를 모시고서, ‘예수님, 오늘 하루 당신의 말씀 따라 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니까 동기들과 함께 외출을 했어요.

 

  동기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해질녘에 돌아와서 성체현시를 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성찰하는데 이런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폐휴지와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 온 체중을 담아 리어카를 끌고 가시던 할머니,

누추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나앉아 있던 아저씨, 잃은 다리로 바구니 하나를 놓고 역전에 엎드려 있던 분, ...

그날 따라 그분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날 아침 성체를 모시고 했던 나의 다짐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채 밤이 저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들이 ‘나의 무슨 상관’이냐며 안일하게 합리화를 하려고 했지만

잠이 드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말씀은 자꾸만 저를 찔렀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오늘 1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실천하는 믿음’과 ‘실천 없는 믿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쉽게 말해, 성당에 나와 주일미사 의무참례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진정한 믿음은 삶에서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보다 더 본질적으로 들어갑니다. ‘믿음은 무엇인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드라마틱한 대화장면을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9)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베드로는 확실하게 스승님의 존재를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이라며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머지않아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스승님, 안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메시아는 그런 분이 결코 아닙니다!’

첫 번째 사도라고 불리우던 베드로마저 믿음에 대한 나약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이 대화는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믿음은 단순히 입으로만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셨던 그 십자가를 나 또한 기꺼이 지고 감으로써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믿음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십자가가 나에게 위로가 되고 때때로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목걸이와 귀고리에 달려서 아름다운 치장이 되기도 하는데 그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아니, 십자가는 예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잖아. 나는 그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아. 피하고 싶어.’

 

이 안일한 태도는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고

아주 당연스럽게 느껴질만큼 우리가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도 제가 그 주일에 외출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배고프고 아파하는 이들 곁에 계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외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십니다.

우리가 지기 싫어하는 그 십자가를 예수님께서는 지고 가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분은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1독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삶’을 묘사하는 동시에 ‘십자가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이사 50,7)

 

  오늘 강론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성당에 나오는 차원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천이 있어야만한다.

그 실천은 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과 내 이웃을 위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웃의 고통 앞에 외면하게 되는 건,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먼저 십자가의 역설적 기쁨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와 결코 뗄 수 없으며, 십자가 안에서만 신앙은 그 빛을 공명시킨다.’

 

  우리 삶의 십자가가 때로 고통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질 때에 비로소 우리는 참 그리스도 신앙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편안하지 않을 수 있는 십자가이지만, 이 십자가 안에서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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