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909 나해 연중 제23주일(에파타! 여러분은 어떤 기적을 바라십니까?)
2018-09-08 22:37:48
박윤흡 조회수 1309

  저는 몇 가지 바라는 기적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오래도록 사시는 것, 여기 앉아 계신 교우븐들이 탈없이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영육간 건강하게 지내는 것,

우리 본당 공동체가 갈라서지 않고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

동기신부들과 제가 이 제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는 것 등.. 많은 기적을 바랍니다.

교우분들은 어떤 기적을 바라십니까?

 

  병자성사를 갈 때마다 인간적인 마음에 바라는 기적이 하나 생깁니다.

‘병상에 누워계신 이분이 육신의 건강을 되찾고 다시 성당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것이에요.

특별히 유가족분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분들의 표정을 볼때면 인간적인 마음에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느님 왜 하필...?’

그런데 그렇게 병자성사를 드리고 나면, 며칠 뒤에 부고를 듣습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기적이 무엇일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참된 기적은 내가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내가 믿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도 믿음이 부족한 탓인지,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자꾸만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는 나약한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 듯 합니다.

 

  오늘 복음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기적 사화를 전달해줍니다.

일차원적으로 이 복음을 접하게 될 때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서 고치셨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집중해서 본다면 그저 육체적 치유의 차원을 넘어서는 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 예식 안에는 ‘에파타 예식’이 있습니다.

이 예식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귀를 열고 묶인 혀를 풀어주는 예수님의 기적을 재현하는 예식입니다.

예식서에 따르면,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제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의 은총을 부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에파타’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귀 먹었다.’하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어두운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를 넘어서서, 내 삶의 조타수를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재정비하는 것이 바로, ‘에파타’라는 것이죠.

사실 성경 속에 예수님의 기적사화를 보면, 단순한 치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된 이로 하여금 이제는 과거의 삶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을 향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의 목적과 그 결과의 종점은 ‘하느님’ 그 분임을 성경은 전하고 있는 것이죠.

 

  위대한 사막의 교부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가 만나고자 갈망하는 그곳에 계시면서 그대를 만나신다.’

교부의 말씀을 이해할 때,

에파타 예식은 단순히 세례성사의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시점에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언제든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심장의 존재를 매순간 느끼지는 못하지만,

심장의 움직임을 알 때에 그것이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역사하시는 심장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를 기울일 때에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기적은 그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꿔 말하면, 하느님께서 역사하심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이야 말로 참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참된 기적은 그런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우리의 닫힌 눈과 귀과 하느님께로 향해 열리는 것이 참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기쿠레 기리시탄 작가 소노 아야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한계는 온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의 배려와 자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같이 일상의 내가 바라는 기적을 우리는 염원하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믿음보다도 ‘표징만을’바라는 우리에게 당신의 계시를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표징만을 바라던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으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하며 지난 주에도 소개해 드렸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영원한 것을’, 이 책의 한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해드리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인간의 야심이나 계획, 명예욕이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류우키치는 그때 깨달았다.

러므로 불멸의 것, 부서지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간절함이, 우리의 묵주기도가 덜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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