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나눔게시판 > 복음의 기쁨
아우구스티누스!
이름에서부터 웅장함이 퍼져나오는 위대한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오늘 교회는 기억합니다.
주교이자 학자, 철학자요 역사가, 수사학자였으며 심리학자인 동시에
교육학자였고 정치철학자이며 저술가였던 아우구스티누스!
형형색색의 다양한 방편으로 명성을 떨쳤던 성인이지만
그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동시에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회개의 용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혹자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입니까?’하고 묻는다면, 대체적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는 젊었을 때 방탕한 인간이었으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와 하느님의 은총,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회개한 성자입니다.”
가장 위대한 업적이랄 수 있는 것은 옛 인간의 탈을 벗고 새 인간의 갑옷을 입은 회개이지만
이것만으로 교회와 세상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크고 심오하기에 형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성인은 로마제국의 일부였던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지방 타가스테(현대 알제리 동부)에서 354년 11월 13일에 태어납니다.
이단으로 분류된 ‘마니교’에 한 때 빠져 있었으나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암브로시우스의 주교의 영향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엄청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어라, 읽으라.’(Tolle, Lege)는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었는데
마침 그 앞에 ‘성경’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펼치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4)
세상적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이 사건은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는 하느님의 은총이었으며,
동시에 어머니 모니카의 쉼없는 기도와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절개’가 가장 크지 않았나 묵상해 봅니다.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꿰뚫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이자 주교가 되어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오롯이 바쳤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아들, 그 아들을 매일같이 집앞에서 기다리던 아버지.
아들이 보이자 맨발로 피투성이가 되는 줄도 모르는 채 아들을 향해 달려가 품에 안는 아버지의 자비.
성인께서는 바로 이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일평생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오늘날까지 기억에 남는 위대한 성인이 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명한 고전이자 시대를 거슬러 아직까지도 명저로 남아 읽히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며 강론을 마칩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우심이여!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아니 있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어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 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 번 만지시자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우심이여!“
댓글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