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826 나해 연중 제21주일
2018-08-24 09:18:58
박윤흡 조회수 1156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더없이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가진 것을 더 가지라고 하시지 않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하시며,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셨고,

그 말씀에서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온갖 기적을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죽을 것’이라며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의 메시아상을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신 자신’이라며 결국 십자가상 죽음으로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어찌되었든 죽음과 부활이라는 삶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시기 전에,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물음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오늘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영’을 강조하십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육’이 우리에게 분명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내적인 원동력은 바로 ‘영’이라고 역설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 6,63)

 

  우리 일상의 모든 판단과 사고방식, 가치관, 정신세계 등 육체적인 활동은

결국 영적인 차원의 결단을 통해 이뤄지기에 영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영’ 그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영’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충직한 믿음이 있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여호수아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외칩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여호 24,15)

 

영의 활동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누구를 따르는지에 따라

악령이 될수도, 성령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4,16-17.18ㄴㄷ)

 

  백성들은 악으로 기우는 영을 추구하였지만

하느님의 예언자 여호수아를 통해 그 조타수를 돌려 거룩한 영, 성령께로 다시금 돌아가겠다며 고백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복음의 말미에 시몬 베드로의 고백이 여기에서 공명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어떤 삶인가?’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그 삶을 제시하십니다.

아주 구체적인 일상의 삶에서 우리와 함께 머물러 활동하시는 성령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21-22.25.30.32)

 

  가정을 성화시키시는 성령의 활동은 더할 나위없이 무조건적으로 기억해야한다며 말씀하실 뿐 아니라,

우리 일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호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역설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말한다’하심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하느님의 교회’이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강론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호를 받아 하느님의 지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의탁하는 믿음의 영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성령께서 늘 함께 해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삶은 성덕에 이르는 하느님의 시간, 영겁의 시간, 카이로스를 살아갈 수 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보살피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끝으로,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되뇌이며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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