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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12사도 중의 한 사람, 성 바르톨로메오를 기념합니다.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나타나엘’로 등장합니다.
바르톨로메오를 그린 성화, 초상화 등의 작품들을 보면 항상 누더기같은 것을 맨몸에 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는 인도까지 갔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설교하였고,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문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참수형을 당하는 잔혹한 형벌로
피의 순교를 통해 하느님을 증거했다고 합니다.
복음은 흥미롭게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의 부르심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말합니다.
‘아니, 우리가 전에 말했던 그 분 있잖아? 그 메시아! 바로 그 메시아를 난 봤어.
자네는 보았는가? 그분은 나자렛 예수님이라는 분이야!’
필립보의 흥분섞인 외침에 불구하고, 나타나엘은 반문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어디 그 가난한 시골마을 나자렛에서 나오겠는가?
더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시겠지.
마굿간에서 나오신 분이 어떻게 우리 메시아겠어? 난 믿지 못하겠네!’
그러자 필립보의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와서 보시오.”(요한 1,46)
이 말씀, ‘와서 보시오!’ 왠지 어디선가 한 번 마주한 듯한 그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 바로 윗 대목,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요한 1,35-39)
‘와서 보아라.’하시니 그분과 함께 묵었다던 그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첫 제자들은 응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오늘 나타나엘도 필립보의 제안에 응답을 하고서는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나타나엘이 ‘하느님의 선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모셨기 때문이고,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이며, 온 삶을 다해 고백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교회가 바르톨로메오 성인을 통해 우리에게 선포하는 메시지는
‘하느님을 모시기’, ‘부르심에 응답하기’,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이 3가지 키워드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하늘 나라의 열쇠임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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