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823 나해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2018-08-22 15:07:15
박윤흡 조회수 1068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22장의 내용으로, ‘혼인 잔치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은 앞서 21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입성’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을 정화하시고(마태 21,12-17),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으며(마태 21,18-22),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도전(마태 21,23-27)을 받으신 이후에,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와 더불어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제게 오늘 복음의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임금은 혼인잔치에 굳이 사람들을 초대를 하고서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과 발까지 묶어서 내치는가?

이 혼인잔치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 데려왔다고 하는데 악한 사람만이 여기에서 내쳐지는 것인가?

무엇이 핵심인가?’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귀의 발밑에 나뭇가지와 옷가지들을 깔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제 우리 구세주께서 오셨다! 우리가 바라던 그 메시아가 오셨다!’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 있었어요.

‘여기 나를 반기는 이들 중엔 두 아들의 비유에 등장하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의 종들을 매질하고 심지어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일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처럼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일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온전히 선하다고 할 사람도, 완전히 악하다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때와 상황, 장소에 따라 우리는 선을 택하기도 하고 악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등장한 비유들에 의하면, 그들은 악을 택했던 것이죠.

좀 더 엄밀히 말해서 선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인 예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혼인 예복은 ‘회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절개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인 동시에 이제는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겠다는

초대받은 사람의 준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당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셨을 때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가장 큰 업으로 남은 것이 바로 ‘사람들의 회개’였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이 비참한 십자가 죽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으셨던 것이죠.

그렇기에 혼인 예복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아름답게 치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혼인 잔치에 함께 하기 위하여 깨끗한 영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1독서의 말씀이 공명되어 퍼집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 36,26-28)

 

  문자적인 접근으로, 소위 예복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내치는 분이 하느님이실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혼을 내면서 때로는 집 밖에 두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하는 그 행동이 정말 자녀가 미워서 그런 것일까요?

결코 아니겠지요!

예수님은 마음이 급하셨던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하루 빨리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라며 부르짖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몫은 무엇이겠습니까? 혼인 예복을 갖추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을 선택하려는 예복을 계속 껴입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서 그것을 선택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선을 택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도 십자가에 못박혀 계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선을 택하고 하느님께 조금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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