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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부자 청년 이야기’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일전에 모든 것을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못하기에, 나 자신을 주지 못하였기에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모든 것을 투신하신 예수님과는 조금 상반되는 부자 청년의 모습처럼 다가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시토회에 입회하여 생활과 모범을 통해 수도자들을 덕행으로 이끌었던,
영향력이 넘치는 성인이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줍니다. 사랑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닌 그 자체로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공로도 되고 상급도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말고는 다른 이유나 열매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 –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되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성무일도4권,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아가에 대한 강론’ p.1312-1313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자신의 기원으로! 자신의 원천으로! 되흘러가야 한다.’
오늘 부자청년이 슬피울며 돌아갔던 이유는 ‘참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태초에 이 세상에 났을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아기의 모습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죠.
모든 것을 발가벗은 채,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려는 갈망보다도,
현재 만족하고 있는 부유한 나 자신을 더 사랑했던 것이기에
시초로, 기원으로, 원천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아야 한다는 의미도 아닐 것입니다.
골자는, 태초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성인의 말씀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한다’는 이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그렇게 다가오고 계심을 역설합니다.
이젠 우리의 차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의탁하는 그런 사랑을 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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