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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12일 모두 복음은 우리에게 ‘빵’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연중 제20주일을 맞는 오늘도 ‘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근래 모 커뮤니티에서 성체모독에 대한 글이 올라왔었고,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성체신심을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시기 위하여
생명의 빵, 성체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임이신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라는 이 후속 권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신비여!’ 축성 다음 바로 이어지는 이 말로 사제는 거행되고 있는 신비를 선포하고,
빵과 포도주가 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뀌는 실체 변화,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이 실재 앞에서 자신의 경이로움을 표현합니다.
성체성사는 탁월한 ‘신앙의 신비’로서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입니다.
교회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성찬의 신앙이며, 특별히 성찬의 식탁에서 자라납니다.
믿음과 성사는 교회 생활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두 측면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선포로 일깨워진 믿음은 성사들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은총 가득한 만남을 통하여 자라나고 커 갑니다.”
(베네딕도 16세, 사랑의 성사, 교황 베네딕도 16세 성하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6항, 2012, p.25)
‘신앙의 신비여!’ 바로 이 외침은,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성체성혈로 변하는 신비로운 실재 앞에서의 ‘고백’이라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고백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한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하나의 마술도구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교황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찬의 희생 제사가 성화 소명과 함께 세례 때에 이미 받은 모든 것을 우리 안에 자라게 하고 증진시켜 준다면,
이는 이제 각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으로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성소로 여기고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가 됩니다.
성체성사 자체는 전례 모임부터 시작하여 일상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베네딕도 16세, 사랑의 성사, 교황 베네딕도 16세 성하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79항, 2012, p.118-119)
정말이지,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단순히 하나의 마술도구도 아니고
내 뜻대로 나의 삶을 이끌어 주는 그런 하느님을 소환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우리 일상의 삶에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 잠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잠언 9,5-6)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에게 2독서의 바오로 사도께서는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의 신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모심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명확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시간을 잘 쓰십시오.”(에페 5,17.16)
사도께서 시간을 잘 쓰라하심은 단순히 ‘시간관리를 잘하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Chronos라고 하는 물리적인 흐름에 따라 시간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Kairos, 곧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겁의 시간을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카이로스를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을 발견해야만 한다고 사도께서는 강조하고 계십니다.
오늘 강론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성체는 단순히 마술적인 도구가 아니다.
성체를 받아모시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시기에
하느님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다하는 것, 곧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영겁의 시간을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우리와 그런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여!’ 바로 이 고백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는 은총 청하는 오늘 하루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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