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814 나해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2018-08-14 13:27:33
박윤흡 조회수 1050

 

  오늘 교회는 비인간성의 극대화 아우슈비츠의 연꽃같은 존재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를 기억합니다.

콜베는 1894년 1월 8일 폴란드에서 출생하여, 청년 시기에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고,

1918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콜베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 대한 자녀다운 효성에 불타는 마음으로

‘성모 기사회’라는 신심 단체를 설립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성모님의 보호와 도우심 아래서 신앙 전파에 노력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다시 폴란드로 돌아왔을 때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신부님께서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십니다.

 

 

  “1941년 2월 17일, 콜베 신부는 나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파비악 형무소에 갇혔다.

... 그해 5월 28일에는 ‘죽음의 수용소’로 불리던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옷, 신발, 머리카락 등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름도 빼앗겼는데, 콜베 신부는 16,670번으로 불렸다.

콜베 신부는 사제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콜베 신부는 이미 자신이 평생을 바친 성모의 마을이 파괴된 것도 알았으나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악보다 강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나무둥치를 짊어지고 가다가 힘겨워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이때 나치 장교 크로트는 콜베 신부에게 발길질과 주먹질을 퍼부으며,

‘지옥에나 떨어진 신부 놈아, 내가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마!’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를 나무둥치 위에 가로눕히고 몽둥이로 50대나 때렸다고 한다.

 

  7월 20일, 콜베 신부는 농사일을 하는 14호 감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수확기였는데, 한 수감자가 쌓아올린 수확물 속에 몸을 숨겨 탈출을 시도했다.

저녁 점호 시간에 한 사람이 대답을 하지 않자 14호 감방 수감자는 전율했다.

아우슈비츠에 통용되던 나치의 법은 ‘한 사람이 탈출할 때마다 그 대가로 열 명이 목숨을 내놓아야’했기 때문이다.

 

  ... 형무소장은 아사감방으로 갈 희생자 10명을 골라냈다.

... 그 중 프란치스코 가조브니체크라는 사람이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죄수가 열에서 나와 그 사람 대신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콜베 신부였다.

나치 간수는 이틀을 아사감방에 몰아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놈들은 튤립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져 죽을 게다.’

 

  그렇게 8월 14일, 콜베 신부가 사랑하던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 전날

아직 살아있던 세 명의 수감자와 함께 콜베 신부는 팔에 페놀 주사를 맞고 죽었다.

그리고 화장터의 화로 속으로 던져졌다.”

 

-가톨릭일꾼,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전쟁 한가운데서 은총을 찾은 사람(2018.05.16. 기사)

 

  콜베 신부님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아사감방에 대신 들어가겠다며 나선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가족이 없습니다. 당신은 가족이 있으니 가족을 만나러 가십시오.

저는 제가 사랑하는 하느님의 성모님의 만나러 가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공명되는 듯 다가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하늘 나라를 얻기 위하여,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신 콜베 신부님의 신앙모범은 대단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콜베 신부님께서 평소 끊임없이 만들어왔던 하느님과의 애틋한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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