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804 나해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18-08-04 13:08:24
박윤흡 조회수 1194

  오늘 교회는 사제들의 수호성인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기념합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삶과 깊은 영성을 통해 다가오는 위대한 가르침은 언제 보고 들어도 큰 감동으로 다가오며,

어려움 속에서 주저하기 보다는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실어줍니다.

오늘은 비안네 신부님을 기억하며 책 한 권을 펴보았습니다.

 

‘아르스 본당신부 성 요한 비안네의 가르침’-사제는 하늘나라 길을 알려줍니다-

(프랑수아즈 부샤르 엮음, 추교윤 옮김, 바오로딸, 2010)

 

‘모든 사제의 영성’이라는 제목을 단 추천글에서 이한택 주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비안네 성인은 우리 시대에 어떤 사제가 필요한지 또 사제는 신자들에게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의 대답은 사제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자가 아니라도, 다양한 재주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모금을 잘하고 집을 잘 짓는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큰 인기를 모으는 강 론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마디로 비안네 성인의 영성은 ‘모든 사제의 영성’입니다.”

 

  사제는 단순히 인간의 능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인간적인 능력을 초월하여 하느님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사랑의 힘에 진가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비안네 신부의 목표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총대리 신부는 비안네 신부를 아르스 본당신부로 파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십시오. 아르스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가서 하느님 사랑을 불러일으키십시오.’

 

  1818년 2월 9일 비안네 신부는 보좌생활을 하던 에퀼라를 떠나 밤중에 아르스에 도착했다.

마을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비안네 신부는 안토니오 지브르라는 어린 목동을 만나 웃음을 지으며,

‘네가 아르스로 가는 길을 알려주면 나는 네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보여주겠다.’하고 말했다.

어린 목동은 비안네 신부에게 아르스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비안네 신부는 어린 목동 뿐 아니라 모든 본당 신자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자 했다.

 

  그가 도착하여 보니 성당엔 아무도 없었다. 주일에도 그랬다.

고해소는 지저분했고 몇몇 여인과 아픈 사람, 임종하는 사람, 버려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술집은 언제나 만원이었고, 사람들은 술집에서 돈과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탕진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즐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이 모인 무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술집에서 일하는 젊은 여인들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에게 흠뻑 도취되어 즐기고 있었다.

미혼모 아이들은 늘어만 갔고 농부들은 하느님을 모독했으며 어린 아이들은 교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p.14-15)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도시 아르스’로 비안네 신부님은 발령이 납니다.

동네의 처참한 모습을 직면하고서 비안네 신부님은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려는 위대한 사제직을 보여줍니다.

 

  “비안네 신부는 이들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사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먼저 그들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본당신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비안네 신부는 점심때가 되면 가정을 방문하여

각 집의 아버지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고 부인한테는 친절한 말을 건네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비안네 신부는 자신이 농부였던 경험을 되살려

농사와 땅의 경작, 암소의 출산과 추수, 농사일의 어려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활용하여 말을 건넸고,

필요한 경우에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매우 상냥한 태도로 어떤 사람도 비난하지 않았고, 농사일을 통해 하늘나라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비안네 신부는 신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가꾸고 양육하며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신자들의 자녀와 배우자와 하느님께 대한 의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안네 신부는 순식간에 모든 주민에게 알려졌고, 길에서 만나는 어린이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비안네 신부는 길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상본이나 묵주, 메달을 즐겨 나누어 주며 강복해 주었다.“(p.16-17)

 

  하느님을 잊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하느님이 누구신지 몸소 보여주신 비안네 신부님의 삶의 방향성은 놀라우리만치 아름답습니다.

신부님의 삶을 보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누군가를 성인품에 올린다는 것은 결국 여기 남아 있는 우리로 하여금

성인을 닮아 우리 또한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충실한 성사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사(Sacramentum = 계약), 하느님과의 계약을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

특별히 성사를 통해서 더욱 직접적이고 전례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전하려고 했었던 그 태도의 마음가짐.

 

  오늘 제게 비안네 신부님의 영성은 깊이 다가옵니다.

교우분들에게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청합니다.

댓글 1개

top 뒤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