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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 독서 모임 중에 읽는 엔도 슈사쿠의 ‘사해 부근에서’라는 책에 빠져 있습니다.
이 책은 신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온힘을 다해 ‘사랑’을 하는 인성의 예수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이들의 손을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 나환자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죽어가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슬퍼하는 예수님 등..
예수님의 여러 사랑이 가득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던 예수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고 원했던 메시아는
모든 이를 살리고 나환자를 낫게 하며 가난한 이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새 임금을 바랐던 것이었어요.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예수님에게 기대가 컸던 그들은 그만큼의 더 큰 실망을 하고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상황에까지 몰고 갑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죠.
그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 믿었던 신을 바랬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결코 그렇게 나오지 않고
온전히 ‘사랑’만을 하다가 떠나가버린 한 명의 유다인 사나이로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은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왜 환영받지 못하는가?
어쩌면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바라는 하느님은 나와 함께 비를 맞아 주시는 하느님인가?
아니면,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내 삶의 도구로 치부되는 하느님인가?’
우리가 냉담을 하고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분께 정말로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한편, 우리가 그분께 드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어려움과 힘든 순간에도 분명 그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배려를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이지,
내 뜻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며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은 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환영하고 있는가?
내가 바라는 하느님은 어떤 모습의 메시아일까?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그분께 드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윤택함을 위해 도구로 치부되는 그런 하느님은 아닐까?
나의 하느님 상은 무엇일까?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할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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