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20180726 나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2018-07-26 00:51:35
박윤흡 조회수 1186

오늘 교회는 성모님의 부모님이신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를 기억합니다.

성경에 '요아킴'과 '안나'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데 왜 교회는 이 두 분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전승에 따르면, 안나 성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의 단식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어여삐보시고 아이를 주셨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아이가 '마리아 성모님'이십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성녀 안나)에서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태어난 것은

'하늘나라 신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두 성인께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두 분을 위해 그 신비를 계시해 주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마태 13,11)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와는 다르게

제자들에게는 비유로 들려주지 않으시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어요.

그것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는

말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굳이 비유로 말씀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에 알아보고 들을 수 있는 은총이 주어져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도 바로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늘나라의 신비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은총이 주어졌던 것이죠!

그런데 ‘하늘나라의 신비’는 어떻게 보면 뭉뚱그려져서 추상적인 것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신비는 두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보는 것! 곧, ‘관상’contemplatio입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는 것이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 아름다운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을 통해서

그밖에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펼쳐지는 모든 순간과 광경을 통해 우리는 그분을 봅니다.

 

이어 둘째는, 듣는 것! 곧, ‘양심에 귀기울이기’입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나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면서

그분의 목소리에 따라 내 삶을 꾸려나갈 때에 펼쳐집니다.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귀 닫아버린다면 신비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에요!

 

결국, 하늘나라의 신비는

오직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을 모실 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오늘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바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겼던 그분들의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그 신앙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셨던 마리아 성모님을 낳게 한 신앙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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